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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 업체인 우리레인보우에는 ‘매출 목표’가 없다. 이 회사 이병구(63) 대표는 “내가 생각하는 매출 목표는 있지만 임원들에게도 얘기하지 않는다”며 “목표를 제시하면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난했던 유년기 기억에 ‘행복’ 집착
이 대표가 유달리 행복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이다. 이 대표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다. 그것도 남들이 대학에 갈 나이인 20세에 검정고시로 얻은 것이다. 학교 문턱이라고는 초등학교 5학년이 마지막이었다. 이 대표는 “한 달 다니고 한 달 돈 버는, 희망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던 날들의 연속이었다”며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찾아간 야학 덕분에 그나마 중학교 졸업장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82년 호주 이민을 결심했다. 기술도, 학벌도, 돈도 없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으로 때우는 일뿐이었다. 바느질, 막노동, 노점상, 빌딩청소, 세탁 등 하루 15시간 이상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은 이 대표는 1986년 건강기능식품 매장을 인수했다. 계속 적자가 쌓여가던 매장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시스템을 뜯어 고쳤다. 기존에는 손님이 진열대에서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 올 때까지 종업원은 가만히 쳐다만 보는 시스템이었다. 이를 고객카드를 만들어 몇 주에 한 번씩 와서 어떤 제품을 주로 사는지 데이터화했다. 또 제품을 사는 이유를 묻고 주요 제품의 기능에 대해 공부했다. 데이터가 쌓이자 손님의 건강상태에 맞는 제품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 1년 새 매출은 두 배로 뛰었다. 이 대표는 “단순히 건강기능식품을 파는 게 아니라 올바른 건강지식을 전달하는 게 우선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1990년대 해외 이민 붐이 일면서 호주에도 한국 이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건강기능식품 분야에 뛰어들었다. 대부분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주 고객이었다. 경쟁이 심해지자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 함량을 줄여 싸게 파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함량을 줄이거나 속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덤핑을 일삼던 가게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이 대표는 “품질이 중요함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1991년 한국에 우리레인보우를 설립했다.
◇혈관 건강 ‘폴리코사놀’ 독점권 얻으며 승승장구
이 대표는 1996년 쿠바 폴리코사놀을 알게 됐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왁스 성분인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 고지혈증약인 스타틴은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를 낮추는 효과만 있을 뿐 좋은 콜레스테롤(HDL) 수치를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폴리코사놀은 HDL 수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당시 호주에서 스타틴은 건강보험을 적용해 23달러 정도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쿠바에서 폴리코사놀을 들여오면 손익분기점이 120달러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폴리코사놀 수입을 결정했다. 1998년 호주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들여왔다. 이어 쿠바의 원료 및 완제품 공장이 호주 GMP(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인증을 받았다.
이 대표가 호주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하자 쿠바 당국은 그에게 아시아 시장 진출을 제의했다. 우리레인보우는 중국 외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쿠바 폴리코사놀 독점공급권을 보유했다. 2000년 국내에 처음으로 쿠바 폴리코사놀을 들여왔다. 2006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혈관건강 생리활성기능 1등급 인정을 받았다. 수많은 폴리코사놀 제품 중 혈관건강 기능성을 인정받은 것은 쿠바 폴리코사놀이 유일하다.
2013년부터는 아예 호주에서 원료를 들여와 국내에서 생산했다. 홈쇼핑 진출로 급격히 늘어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는 생각도 컸다”고 말했다.
◇매출목표·계약직·인사평가 없어
우리레인보우는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지만 역설적으로 매출 목표는 없다.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직원들에 스트레스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27개 백화점 매장 직원을 포함해 93명 전 직원이 정직원이다. ‘매장 직원을 계약직으로 하면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다’고 충고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대표는 생각이 다르다. 그는 “매장 직원이 밝은 모습으로 고객을 대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고용불안을 없애는 것”이라며 “계약직에게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바라고 고객에게 좋은 제품이라고 권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말했다.
우리레인보우는 연봉책정을 위한 직원평가제도도 없다. 직원평가는 회사가 하지 않고 직원 스스로 한다. 스스로 매긴 평가를 바탕으로 회사가 기본적으로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연봉을 인상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직원은 더 올려준다. 또 3년 근속자는 회사에서 호주 여행을 보내 준다. 회식을 하면 식대보다 교통비가 더 많이 나간다. 안전하게 귀가하라고 회사에서 택시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줘 행복해 하는 걸 보는 게 내 행복”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는 이병구 대표를 ‘병구님’으로 부르는 등 직급 대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권위를 싫어하는 이 대표가 제안해 3년 전부터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이 대표는 “직책은 업무의 범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권위를 뜻하는 게 아니다”라며 “직책을 부르는 순간 위계가 생기고 벽이 쌓여 소통이 줄어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