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린 네샤트 ‘알라의 여인들’. 작가가 직접 모델이 돼서 촬영했다. 얼굴 앞에 곧추 세운 게 총이다. 얼굴 위에는 작가가 직접 써넣은 이슬람 글자가 새겨져 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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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나무가 크게 자라기 위해선 마디가 생겨야 하는 법이다. 문학과 예술도 커다란 시련과 고통의 시간 후에 더 견고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두 명의 미술가도 어두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예술의 꽃을 피워냈다. 이란 출신 쉬린 네샤트(57)는 이슬람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칠레 출신의 이반 나바로(42)는 1970~80년대 독재정권의 폭압을 지나 자유와 희망, 인권을 복원했다.
▷네샤트의 ‘얼굴에 새긴 저항’
“17세에 이란을 떠나 미국 유학을 갔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시기였다. 그 직후에 이슬람혁명이 발발해 12년 동안 가족과 헤어져 지내야 했다. 나는 이란 출신이다.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네샤트는 이번 전시작들이 “개인적인 관점”의 결과물임을 특히 강조했다. 자신은 “이란을 대표하는 대사가 아니다”며 “순전히 개인적인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네샤트의 인생 여정을 보면 이란의 정치·역사, 이슬람 여성의 인권 등을 분리해서 보기는 어렵다. 유학과 혁명, 이민생활이라는 시련이 있었기에 사진·영상·비디오설치 등 다양한 영역으로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고 전 세계인에게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 쉬린 네샤트 비디오 연작 ‘환희’(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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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지난 20여년 간 만들어온 작품 50여점이 소개된다. 초기작인 사진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을 비롯해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비디오 ‘소란’(1998)과 ‘환희’ ‘열정’ 연작, 2009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영화 ‘여자들만의 세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알라의 여인’에서 검은 히잡을 두른 채 총을 든 여인은 이슬람 여인의 강인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상징한다. 인물사진 위에 직접 써넣은 이슬람 문자는 이란의 시이거나 구금된 사상범들의 이야기들이다.
“한국남자와 결혼한 적도 있어 한국문화가 많이 친숙한 편이다. 이란과 한국은 전혀 다른 나라지만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 미술관에서 준비한 회고전에도 개인적인 이유로 방한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네샤트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때도, 2010년 몽인아트센터의 전시 때도 방한하지 못했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7월 13일까지. 02-3701-9500.
▷나바로의 ‘네온에 비친 자유’
“나에게 미술작업이란 멋진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내 작업이 정치적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스’다.”
네온아트로 주목받는 나바로의 개인전 제목은 ‘299 792 458 m/s’다. 빛의 속도를 의미한다. 제목처럼 전시에는 네온과 일방투시 거울을 이용한 설치작품 14점이 나온다.
| 자신의 네온작품 앞에 선 이반 나바로(사진=갤러리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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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 설치된 ‘현대 울타리’가 대표적.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전시장 한쪽 면을 가로지르며 울타리처럼 펼쳐져 있는 네온기둥이다. 2011년 아모리쇼에서 선보였던 ‘아모리 울타리’의 한국 버전이다. 벽은 폭력으로부터 선을 긋고 보호하는 힘을 가진 것이라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말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상징한 ‘현대 울타리’(사진=갤러리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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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2층에는 ‘천국 또는 라스베이거스’라는 부제를 단 시리즈가 있다. 세계 유명 고층빌딩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인데 그 높이만큼이나 움푹 들어가 보이는 깊이가 아찔하다. ‘버든’(Burden)으로 명명된 이 작품은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 타워를 표현한 것이다. 나바로는 “고층빌딩 시리즈를 한 지는 3년쯤 됐다. 빌딩이라기보다는 추상적 모양이 흥미로워 계속하게 됐다, 롯데월드도 그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나바로에게 네온은 자유와 희망이다. 1973년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독재정권 아래서 보낸 어두운 유년시절에도 잃지 않았던 자유에의 갈망과 해방이다. 피노체트 정권이 야간통금과 정전으로 시민들을 통제했던 기억이 그에겐 네온과 형광등이라는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가 됐다.
작가는 1997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뉴욕을 거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뉴욕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이민자들의 삶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전시 중이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4월 27일까지. 02-2287-3500.
| 이반 나바로 ‘버든(Burden)’. 서울 잠실 롯데월드 타워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사진=갤러리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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