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관계자는 자와히리가 1988년 빈 라덴이 알카에다를 설립할 때부터 도움을 주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활동할 때도 함께 했지만 6년전부터는 빈 라덴을 소외시켰다고 말했다.
빈 라덴이 변방으로 밀려난 것은 더 이상 알케에다 활동을 지원할만한 자금이 없었던데다 조직 내의 인기도 예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둘은 약 6년 전부터 제 갈 길을 갔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빈 라덴이 조직에서 소외됐다고 가정하면 그가 최근 알카에다의 테러활동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파키스탄 당국의 평가도 설명이 된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이 파키스탄 영내에서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 사살한 뒤 관련정보 부재에 대해 질책하자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빈 라덴과 자와히리가 갈라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보 분야의 또다른 미국 정부 관계자는 빈 라덴이 자금문제로 곤경을 겪었다는강력한 증거는 있었다고 말했다.
빈 라덴이 알카에다의 위대한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일상적인 작전에는 크게 역할을 하지 않는 반면 자와히리는 알카에다의 이념가이자 작전 사령관으로 오랜기간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알카에다 지부가 납치 등으로 수백만달러씩 수입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불화가 사실이라면 빈 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로 이주한 것도 설명이 된다.
빈 라덴이 은신했던 건물은 6년전 지어진 것으로 빈 라덴과 그 가족들은 약 5년전 이 건물로 이주했다고 파키스탄 관리들은 전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재소자 심문 기록에 따르면 자와히리도 지난 2005년 5월 거주지를 옮겼다.
두 사람 간의 긴장은 2005년 미군의 이라크 공격 이후 이라크 내에 알카에다 새지부가 창설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알카에다가 이라크내 시아파 교도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면서 이전까지 알카에다가 얻은 지역민심이 허물어져 버렸고 이를 둘러싸고 빈 라덴과 자와히리 간에전략상 갈등이 노정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