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회생 이끈 박병엽 부회장의 `희생`

재산·휴식 포기한 3년으로 부활 날개짓
"팬택-팬택앤큐리텔 합병으로 재도약 준비…합병 실패시 물러날 것"
  • 등록 2009-10-18 오전 11:30:00

    수정 2009-10-18 오전 11:30:00

[이데일리 조태현기자] "지난 3년간 마음고생도 심했고 정말 죽어라 일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임직원들도 죽겠다 싶게 일했습니다. 지나고보니까 그렇게 일해도 죽지는 않더군요. 지금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쉬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하루라도 경쟁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상암동 팬택계열 사옥에서 열린 팬택-팬택앤큐리텔 합병 발표회에서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 한 이야기이다. 박 부회장은 이날 작심한 듯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이야기했다.

이날 배포한 보도용 사진을 두고는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는지 모르겠다"며 "3년전과 비교해 너무 늙어보인다"고 속상해했다.

3년전은 팬택계열이 존폐의 기로에 섰던 시점이다. 1991년 박 부회장이 6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팬택계열은 이후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2001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팬택앤큐리텔로 편입시켰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의 단말기 자회사인 SK텔레텍을 인수해 팬택과 합병시킨 바 있다.

한때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고도성장에 따른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한 팬택계열은 결국 지난 2006년말 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박 부회장의 입장도 `잘 나가는` 기업의 오너에서 하루아침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이후 행동은 비슷한 처지의 다른 기업들과는 달랐다. 박 부회장은 회사가 유동성을 위기를 맞자 자신의 팬택계열 지분 모두를 포기하면서 채권단을 설득했다. 당시 박 부회장의 지분은 28%. 시가로 4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됐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채무조정 등의 조치는 이러한 박 부회장의 희생이 채권단에 신뢰를 준 덕분이다. 실제로 박 부회장의 현재 재산은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만 포기한 것이 아니다. 개인생활과 휴식도 포기했다. 박 부회장은 월요일 아침이면 경영점검회의를 위해 새벽 5시30분에는 출근한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따로 없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도 박 부회장은 추석 당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모두 출근했다. 이틀을 쉰 것은 자신이 출근하면 임직원들도 출근하기 때문에 쉰 것이다.

박 부회장의 열정과 자신의 회사를 회생시키겠다는 책임감은 퀄컴의 출자전환, 채권단의 추가 출자전환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채권단이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팬택계열의 CEO를 박 부회장이 계속 맡게 하는 것도 이같은 박 부회장의 희생이 이끌어낸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박 부회장은 지난 16일 또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팬택과 팬택계열의 합병 추진이 바로 그것. 박 부회장은 이날 발표회에서 "만약 합병에 실패한다면 팬택계열 자체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합병이 안되면 책임지고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배수진`인 셈이다.

박 부회장은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로 오는 2013년 매출액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박 부회장의 희생이 이같은 목표를 이뤄낼지에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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