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견제가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1월 이후 한국 기업과 협회, 양국 주요 부처와 회의를 거듭하고 수많은 고민의 밤을 보낸 끝에 내린 결론은 중국과의 결별은 ‘예정된 미래’라는 것이었다.
|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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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은 미국으로부터 포괄적 수출 통제 유예 혹은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미 정부가 사전에 승인한 기업에만 지정 품목에 대해 대중 수출을 허용하는 허가 방식) 조치를 얻어냈음에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물론, 향후 500단 이상 낸드플래시 양산을 위한 도쿄일렉트론, 램리서치 등의 최신 장비마저 중국 시설로 반입할 수 있는 여지는 미 대선일인 지난 5일 이후 극히 낮아졌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말기인 2019년부터 중국 공장은 향후 5년을 전후로 사실상 페이드 아웃(Fade-Out·점진적 철수)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넓게 퍼져 있었다.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디리스킹’, 즉 현재 반도체를 포함한 중국 수출 제조업의 혜택을 가능한 한 길게 가져가려고 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중국 D램·낸드플래시 공장이 다소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법(칩스법)에 의거해 외국 기업에 굳이 돈(보조금)을 줄 필요가 없었고, 관세만 부과해도 알아서 미국 내 공장을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 접근성만 갖고 협박했어도 미국의 목적인 첨단 반도체 제조기반 구축은 성공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 대표, 윌버 로스 전 상무장관과 함께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화웨이, 하이실리콘, SMIC 등 주요 기업을 빈사 상태로 만들었던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이어서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반도체 외에 반도체가 투입된 스마트폰, 태블릿, PC, 서버 등 캐시카우 제품 시장에서도 중국의 수출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탑재 반도체 국적에 따라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0%의 보편관세를 넘어 특정 국가에 대한 50% 혹은 100% 고관세를 부과하거나 전면 수출 통제 조치를 강행할 경우 올해 이후 국제 반도체 분업구조는 ‘예정된 미래’로 더 빠르게 접어들 공산이 크다.
한국 기업들로선 향후 5년 내외로는 중국 공장에서 핵심 반도체 제품을 더는 생산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금액 측면에서도 중국 공장의 생산 비중 역시 점점 감소할 것이다. 과연 트럼프 2기는 위기일지 기회일지, K반도체에 승부의 시간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