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위기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은 1980년대 물가급등과 경기침체에다 경쟁력의 약화로 일본에 밀리고 있었다. 1970년대 발생한 석유위기의 여파였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혁신 기업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러자 1983년 타임즈지는 신기술과 혁신이 경제의 무게축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며 신경제(New Economy)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서비스업은 ‘경제의 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이 낮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이런 말은 쑥 들어갔다. 구글과 아마존 등 IT서비스기업이 급성장하고, 제조기업도 서비스기업처럼 변하며 신기술을 접목해, 미국 경제는 날개를 달고 고성장·저물가·저실업 상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석유위기의 충격이 미국보다 2배 컸다. 1980년 물가상승률은 미국 14%, 한국 29%였고 경제성장률도 미국 -0.26%, 한국 -1.6%였다. 하지만 회복의 강도와 걸린 기간은 한국이 훨씬 양호했다. 1983년 한국과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3% 남짓으로 비슷한데 경제성장률은 한국 13.2%, 미국 4.6%로 3배 차이가 났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경제의 전환이 훨씬 과감하고 신속했다. 통신과 금융 등을 민영화하고, 대학 입학정원을 대폭 늘려 위기 속에서 희망의 싹을 키웠다. 경제 자유화 정책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성장하게, 공정경쟁정책은 중소기업이 수익성을 높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달리 서비스업은 규제에 시달렸고, 경제의 무게 축은 제조업에 두었으며, IT산업도 하드웨어 제조 중심이었다.
외환위기는 한국에게 IT서비스기업의 성장과 신경제로의 전환을 가져단 준 성공의 기회였다. 하지만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는 더 많아졌고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은 작아, 서비스업의 고용은 늘어도 생산성이 낮아 저임금 일자리가 많았다. 다행히 흙속에서 꽃을 피운다고 미국의 성공 경험에 자극 받은 혁신 기업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난 10년 사이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서비스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불모지대로 치부되었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웨어의 개발도 빨라지면서 사업 영역도 전자상거래와 게임 등으로 다양해지고 확대되었다. 외국 시장으로의 진출과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인력난으로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젊은 개발자는 부족해, 인건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낮아졌다.
당면한 경제위기가 지나가는 태풍이 될지 경기침체의 수렁이 될지 의견이 나뉜다. 하지만 미국이 신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했던 것처럼 한국의 IT서비스기업도 돌파구를 열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쿠팡처럼 새로운 사업으로 물류를 혁신하고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애플과 테슬라를 꿈꾸는 IT서비스기업들이 인공지능, 빅 데이터, 로봇 등이 결합된 4차 산업혁명의 전초 기지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신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하려면 당연히 법제도와 지원책이 IT서비스기업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의 정치 현실에 비추어보면 녹록지 않다. 따라서 IT서비스의 혁신 기업가들은 재도약한다는 각오로 기술혁신을 넘어 조직혁신과 인적자본혁신으로 인력난 극복에 나서야 한다.
도전을 극복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의 IT서비스기업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숙련 인력 부족에다 임금과 고용관행이 경직적이라 경기가 악화되면 수익성의 감소는 그만큼 커진다. 미국은 고용관행이 유연해 인력의 확보와 유지가 용이하다. 한국의 IT서비스기업이 성장성을 살리고 수익성도 높이려면 신중년층으로 불리는 5060세대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1980년대 직장 생활을 시작한 5060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했고, 문제해결과 의사소통 등 경험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맞는 임금과 고용관행을 만들고, 서비스의 특성에 맞는 인재를 선발해 재교육하며,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한국의 IT서비스기업은 날개를 달 것이다. IT서비스기업의 시대적 미션은 한국의 신경제를 성공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