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김동연이 보여준 공감의 힘

자기고집 센 꼰대, 철지난 과거 얘기 없고
청년 주인공으로 미래 화두 얘기하기 때문
기성세대에 반감 커질수록 제3지대 관심 커져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청년 얘기 귀 기울여야
  • 등록 2021-05-11 오전 6:00:00

    수정 2021-05-11 오전 6:00:00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오늘 강연에서 들은 걸 우리 20대 딸에게도 얘기해야겠어요.”

50대 주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8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강연장에서다. 김 전 부총리가 퇴임 이후 처음으로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강단에 섰다. 당시 김 전 부총리의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 사인을 받기 위해 20대부터 50대 이상 다양한 연령대의 중년까지 줄을 섰다. 김 전 부총리 강연은 서울, 강원에서도 요청할 정도로 인기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인 2017년 6월1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 캠퍼스에서 열린 이임식에 참석했다. 당시 한 신입생이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붉히자 김 총장이 달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강연장을 찾은 30대 자영업 부부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정치 얘기가 없어서 강연이 좋았다”고 했다. 실제로 김 전 부총리의 이날 100분간 강연 대부분은 삶에 대한 평범한 얘기였다. 기자들이 주시하는 선거 출마 등 정치 행보 얘기는 일절 없었다. ‘노무현 돌풍 잇겠다’는 식으로 과거 대통령을 소환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또 다른 참석자는 “꼰대 같은 얘기가 없어서 좋았다”고 했다. 훈육하듯이 가르치려고 하는 얘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가상자산)에 몰리는 2030 세대에게 “잘못된 길로 가면 잘못된 길로 간다고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고 했던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같은 스타일의 얘기는 없었다. 국회의원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지 않았다며 폭행·욕설을 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처럼 의전을 따지지도 않았다.

정치·꼰대 얘기가 사라진 강연은 청년들 얘기로 채워졌다. 청각장애인들을 운전기사로 고용해 ‘고요한 택시’ 회사를 운영 중인 29살 CEO, 1만원 이하로 저렴하면서 정성을 담은 밥상을 준비하는 30살 자영업자, 노량진 ‘컵밥’처럼 컵에 담은 물회를 선보여 코로나19에도 대박이 난 청년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김 전 부총리와 만났던 이들은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고민하거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청년들이었다.

강연에서는 이들 청년들이 마주하게 될 과제가 화두였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서 계층이동을 활발하게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안으로는 코로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밖으로는 미·중 충돌과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까. 흑백·진영·이념논리가 강해지는데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할 것인가. 계층이동·혁신·소통이란 미래 과제에 대한 얘기였다.

강연을 듣고 나오면서 묵직한 여운이 남았다. ‘김동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돼서다. 미래 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제대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살이처럼 그날의 이슈만 쫓아가기 바쁜 현실에서 김 전 부총리 홀로 미래를 위한 어젠다를 공론화 하고 있는 것일까.

‘김동연 현상’을 주목하는 것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대선 후보로 거론돼서가 아니다. 제3지대에서 ‘김동연 현상’이 짙어질수록 정부, 국회, 언론은 외면받을 것이란 위기의식 때문이다. 청년들은 꼰대 같은 어른, 과거에 사로잡힌 정부·국회에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을 가르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과 공감하는 게 필요하다. 그들의 절망과 상처에 기성세대는 귀를 열어야 한다. 정부 대책은 그 뒤에 마련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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