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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범죄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이 아무리 진화하더라도 범죄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도구가 대포통장과 대포폰이라는 점에서 이를 근절하는 게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한다. 개설 규제와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사전 규제 차원에서 신규 계좌발급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은 총 6만933개로 전년대비 1만5439개(33.9%) 급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타인 명의의 통장을 매매·대여한 것뿐 아니라 범죄 창구로 이용된 통장을 모두 대포통장으로 분류한다”며 “사기 기법이 고도화되면서 피싱 피해자한테 대출을 빙자해 또 다른 피해자의 계좌에 입금하도록 한 뒤 현금을 인출하는 식으로 범행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포폰 문제는 더 심각하다. 1인당 개설할 수 있는 휴대폰 개수에 사실상 제한이 없는 데다 휴대폰을 개설하면서도 개통자가 직접 대면할 필요도 없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 명의를 도용하거나 급전이 필요한 사람의 이름을 빌리는 ‘선불 대포폰’이 많이 유통된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 사람 명의로 휴대폰 10개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최근 대포폰 832대를 개통해 유통한 조직이 검거된 사건 등을 볼 때 휴대폰 개통과 관련해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발신번호 변작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주로 해외에서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070’으로 번호가 시작되는데 피싱 조직이 이를 ‘010’ 혹은 ‘02’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실제 보이스피싱으로 9억원의 피해를 입은 70대 어르신의 경우 ‘02-112’로 뜬 발신번호를 믿었다가 피해를 당한 사례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서는 대포폰·대포통장 대응과 함께 국민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철웅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국장은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거래에 좀 더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분들이 이를 불편하게 여겨 금감원이나 은행에 많은 항의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불편하고 까다로운 만큼 안전이 보장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100만원 이상 송금할 경우 ATM기기에서 30분 동안 인출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 중인데 이로 인해 피해자가 송금하더라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인출에 실패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해 말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보이스피싱 방지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고도화·지능화하는 금융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IT기업 등과 함께 ‘보이스피싱 방지 AI 앱’과 ‘대출사기 문자 방지 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킹 앱을 휴대폰에 깔도록 하는게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의 트렌드”라며 “앱을 설치한 경우 피해자가 실제로 경찰, 검찰, 금감원 등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콜센터로 연결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국도 AI를 통한 보이스피싱 방지 앱, 대출사기 문자 방지 알고리즘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 확산하겠지만 소비자들도 구글 플레이 등 검증된 앱 마켓이 아닌 곳에서 배포되는 앱 파일은 설치하지 말고 급전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로부터 입금 요청을 받으면 꼭 당사자와 직접 통화를 해 확인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