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이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로서, 이번 문건은 광주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너무도 상세한 군 동원계획과 언론통제 방안, 그리고 국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위헌적 발상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육군을 오늘의 전문화된 군대로 양성하는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윌리엄 셔먼 총사령관은 군을 정치로부터 분리할 것을 완강하게 주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육군 장교도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거나 표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정치적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군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 자체가 군을 정치화시킬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장교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투표에 불참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다. 이들이 시민적 의무인 투표까지 거부한 것은 정치적 편향의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잣대에 비춰 볼 때 우리 군은 너무 경솔했고 진중하지 못했다.
문건 내용은 ‘문민통제’의 원칙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문민통제의 본질은 헌법 질서와 법률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문민 통치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설령 명백한 위법성이 없다고 해도,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는 명령에 대해서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이종찬 육군 총장에게 부대이동을 명령했지만, 그는 거부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군대를 동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명령이라도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무사 문건은 단순히 사법적 판단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문건의 ‘윗선’과 성격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군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왜 이런 식의 발상이 이어지느냐는 점이다. 우리 군이 정치적 중립성과 문민통제의 원칙에 대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실무를 담당한 기무사 장교들의 잘못이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군인의 길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부족했다면, 이들만의 잘못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왜 그들이 그런 식의 발상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파문을 계기로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장교 교육의 내용과 체계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