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기무사의 정치적 중립 위반

  • 등록 2018-07-18 오전 6:00:00

    수정 2018-07-18 오전 6:00:00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던 촛불시위는 최근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평화적이었다. 시민은 전투경찰에게 장미꽃을 선물했고, 경찰들도 시민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누군가 폭력을 행사하면 시민이 나서 자제를 촉구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문화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평화적 시위를 두고 군대와 탱크를 동원한 진압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이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로서, 이번 문건은 광주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너무도 상세한 군 동원계획과 언론통제 방안, 그리고 국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위헌적 발상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무사 입장에서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고, 단순한 계획에 불과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부의 지시라 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문건의 내용은 ‘군의 정치적 중립’ 원칙에 들어맞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그에 대한 과도한 동원계획은 군이 물리력을 동원하여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아직도 군이 군대를 동원하여 정권을 찬탈할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군대의 동원은 지극히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설령 도상계획이라 해도 군의 정치적 중립이 의심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

미국 육군을 오늘의 전문화된 군대로 양성하는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윌리엄 셔먼 총사령관은 군을 정치로부터 분리할 것을 완강하게 주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육군 장교도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거나 표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정치적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군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 자체가 군을 정치화시킬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장교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투표에 불참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다. 이들이 시민적 의무인 투표까지 거부한 것은 정치적 편향의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잣대에 비춰 볼 때 우리 군은 너무 경솔했고 진중하지 못했다.

문건 내용은 ‘문민통제’의 원칙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문민통제의 본질은 헌법 질서와 법률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문민 통치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설령 명백한 위법성이 없다고 해도,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는 명령에 대해서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이종찬 육군 총장에게 부대이동을 명령했지만, 그는 거부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군대를 동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명령이라도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무사 문건에서 국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놀라운 발상도 포함되어 있다. 군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국회의 합헌적 입법행위(위수령폐지)를 ‘우려’하거나 이를 무력화시킬 방안(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을 제안하는 것은 사실상 헌정질서를 우회해서 군의 정치개입을 지속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 자체가 위법적인 내용이 아니라 해도, 정치개입의 오해를 충분히 살만한 부분이며 문민통제의 원칙을 침해하는 발상이다.

이번 기무사 문건은 단순히 사법적 판단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문건의 ‘윗선’과 성격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군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왜 이런 식의 발상이 이어지느냐는 점이다. 우리 군이 정치적 중립성과 문민통제의 원칙에 대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실무를 담당한 기무사 장교들의 잘못이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군인의 길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부족했다면, 이들만의 잘못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왜 그들이 그런 식의 발상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파문을 계기로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장교 교육의 내용과 체계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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