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욱 농심 라면개발실장이 29일 서울 신대방동 농심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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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십여 가지의 반찬이 있어도 밥이 너무 질거나 설익었거나 고두밥이면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라면도 마찬가지다. 면이 탄력이 없거나 국물과 따로 논다면 완전한 라면이라고 볼 수 없다.”
정성욱(59) 농심 라면개발실장(상무)은 29일 서울 신대방동 농심 본사 도연관 2층 조리과학실에서 ‘신라면블랙 사발면’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1985년 농심에 입사한 그는 지난 33년간 스프개발, 식용유지(면을 튀기는 기름), 면(麵) 연구 부서를 두루 섭렵한 일명 ‘라면박사’다. 그런 그가 유독 ‘면’을 강조한 것은 라면의 가장 기본이 되는 면, 기본을 탄탄히 해야 ‘정직한 맛’을 낼 수 있다는 농심의 철학에 있다.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일본 동경사무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근처 이나니와 우동집을 자주 찾았는데 면과 국물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맛을 냈다고 한다. 다른 간은 취향대로 넣어 먹는 식인데, 면발이 살아 있으니 별도의 양념이 크게 필요치 않더라고 했다.”
이나니와 우동은 일본의 5대 우동이다. 아키타현 유자와시 지역에서 수타면 제법으로 만들어 바람에 말린 건(乾)우동이다. 반죽할 때 전분가루를 묻히고 면 굵기는 직경이 1.3mm보다 약간 굵고 납작하다.
살아 있는 면, 농심은 이나니와 우동과 같은 면을 대중들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면 연구에 장기적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면개발팀 팀원만 해도 타사와 비교해 10배가량 많다. 정 실장은 “90년대 초 약 3년간 연구해 선보인 것이 ‘생생우동’이다. 면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인 제품으로 면에 수분함량이 63%나 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분이 많다 보니 아무리 꼼꼼하게 포장을 해도 곰팡이가 생겼다”며 “고심 끝에 면의 수소이온지수(pH) 농도를 낮추고 식초를 희석한 물에 면을 침질하는 살균공법으로 세상에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 정성욱 농심 라면개발실장이 29일 서울 신대방동 농심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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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1980년대에 스프의 고급화를 통해 라면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프와 더불어 면을 고급화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국내 최초로 나온 것이 ‘생생우동’이다. 이후 2007년 건면전문공장 녹산공장을 준공, 용기면 건면인 ‘건면세대’를 출시했다. 이어 2008년에는 세계 최초 개별포장 냉면인 ‘둥지냉면’과 한국형 ‘쌀국수’를 내놨다. 올해에는 발효숙성면을 개발, 건면새우탕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정 실장은 건면새우탕을 들고는 포장지에 적힌 ‘발효숙성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라면의 ‘면’에도 제빵기술이 들어간다. 빵을 만들 때 효모를 넣는다. 그래야 빵이 부풀고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그런 제빵, 제면공법을 융합해 만든 것이 발효숙성면이다. 면이 굵어도 국물이 잘 침투할 수 있도록 면발에 공기구멍을 뚫어 맛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했다.”
국내 라면업계 1등 브랜드의 자존심은 ‘기본’에 있다. 건강한 정통라면을 추구하는 농심은 지난 1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식품안전실을 신설했다. ‘건강한 맛’, 그러면서도 식품 안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농심의 의지다.
정 실장은 “아주 맵고 자극적인 맛도 물론 다양성 측면에선 중요하다. 그러나 농심은 오랜 면 연구를 통해 맛의 깊이로 고객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농심의 경쟁력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