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행복주택'이 신혼부부에게 '행복주택'이 아닌 이유

  • 등록 2017-09-15 오전 5:30:00

    수정 2017-09-15 오전 5:30:00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행복주택은 도저히 얘기를 기르면서 살 수가 없어.”

출산을 앞둔 친구의 요즘 제일 큰 걱정은 바로 아기도,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아닌, 바로 ‘집’이다. 주택 매입은 가격의 높은 벽만 느끼고 포기했고, 임대주택 역시 입주 경쟁률에 밀려 떨어졌다.

고민하는 친구에게 최근 나라가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행복주택은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권해봤다. 그러나 친구의 대답은 단호했다. 집이 너무 작아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단 것이다.

대학생·신혼부부·사회초년생 등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역세권 임대주택을 공급해 주거난에 지친 서민들의 고민을 덜어준다는 행복주택. 그러나 아이가 있거나 출산 계획이 있는 신혼부부에게는 비싼 집세만큼이나 턱없이 좁은 주거 공간의 한계가 크게 다가오는 듯했다. 행복주택은 최대 6년간 거주가 가능하고 만약 자녀가 생기면 10년까지 거주가 보장되지만, 원룸만 한 크기의 집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신혼부부용 행복주택은 전용면적 36~45㎡ 규모로 공급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공급되는 행복주택을 보면 전용 40㎡ 미만이 대부분이다. 올해 1차 공급계획이 잡힌 전국 총 4214곳 중 전용면적 40㎡ 이상인 곳은 서울 구로구 천왕동 천왕2지구 행복주택 33가구가 전부다.

공급 가구당 행복주택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는 현행 구조 역시 턱없이 좁은 행복주택 설립을 부추기고 있다. 행복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서는 집 크기를 줄여 가구 수를 늘리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신혼부부용 주택을 전용 40㎡ 이상으로 공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늦게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더욱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국고보조금 지급 구조를 바꾸고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주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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