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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예술가답게 신비롭게 사는 걸 늘 동경하셨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우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 뜻을 이루신게 아닐가 싶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화가로 꼽히는 천경자(1924~2015) 화백이 두 달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2일 서울시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8월 19일 천경자 화백의 장녀 이혜선 씨로부터 천 화백이 같은 달 6일 뉴욕 자택에서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씨가 다음날인 20일 천 화백의 작품을 소장한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와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천 화백은 2012년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미술월간지 ‘아트프라이스’가 화가와 미술애호가, 관람객 등 57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당시 생존화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화가 2위로 선정됐다. 국내 여성화가로선 최고의 위치에 오른 천 화백은 야성적이고 강렬한 채색화로 남성 위주의 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그림 외에도 활발한 문필활동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이후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천 화백은 1960년대 일본 도쿄의 여러 유명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며 화단의 ‘스타’로 떠오른다. 활달한 성격과 파격적인 스타일을 자랑하던 천 화백은 박경리·한말숙·최순우·김환기·고은 등 예술인들과도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 1954년부터 1974년까지는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임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동양화가인 이숙자 전 고려대 교수 등이 직계 제자로 꼽힌다. 198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서훈 받아 예술가로서의 공로를 공인받았다.
하지만 천 화백은 한때 왜색풍의 그림이라며 화단에서 외면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특유의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화풍으로 ‘꽃과 여인’을 소재로 한 채색화 작업은 독보적인 경지를 이뤘다. 여기에 해외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국적인 풍경화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덕분에 다작 작가임에도 작품가가 높은 편이다. 한국미술품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천 화백의 작품은 9억 9215만원어치가 팔려 낙찰총액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천 화백의 경매 최고가 작품은 ‘초원 II’(1978)로 2009년 12억원에 낙찰됐다.
또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회원인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 안 된다며 2월부터 월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하면서 생사 여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에 천 화백 가족은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대한민국예술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사망진단서 등으로 천 화백의 별세를 확인하면 수당 소급 지급과 미술계에 남긴 위상을 고려해 훈장 추서 검토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재 천 화백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 전을 통해 천 화백 기증작 60여점을 상설전시 중이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을 기증할 당시 “내 그림이 흩어지지 않고 일반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모든 저작권을 서울시에 위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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