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입단속' 금감원 제재심, 누구를 위한건가

  • 등록 2015-02-03 오전 7:00:00

    수정 2015-02-03 오전 7:00:00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KB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와 관련해선 일체 언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아무 것도 말해 드릴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장사’ 행위에 대한 금감원 제재심이 있던 지난달 29일, 제재심에 참석한 인사들은 한 목소리가 된 듯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더러는 아예 작정한 듯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다. 신임 금감원장이 부임한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이러한 변화는 작년 하반기를 달군 ‘KB 사태’가 분기점이 됐다. 당시 금감원 제재심은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경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전임 금감원장은 유례없이 거부권을 행사해 중징계 조치했고, 금융위 정례회의는 아예 직무정지로 제재 수위를 높였다. 언론은 금융당국 수장들이 발표한 제재심 결과를 생중계했고, 오락가락하는 제재 조치에 대한 국회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후 금융위는 갑작스럽게 징계 수위를 높인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왜 경징계를 내린 사안이 직무정지가 됐느냐’는 국민과 시장의 물음에 금융위는 ‘제재심 결정 내용이 외부에 공개된 것’을 탓했다.

이후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조치 33조3항을 신설, 금융위 정례회의 이전에 제재 관련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단속했다. 이제부터는 언론은 물론 국회에도 금융회사의 제재 관련 사안을 이야기하면 규정 위반 행위가 됐다.

금감원 제재심은 법원으로 치면 검찰의 구형에 해당한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최종적인 결정은 아니지만, 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이유는 검사와 판사가 공정하게 죄를 심판하는 지 국민의 감시를 받겠다는 의미다. 물론 모든 재판 과정을 공개해도 법원의 판결이 공정한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의사 결정권자가 아무도 모르게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금감원은 과거에는 종종 자본을 쥔 금융회사들의 로비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제재심 결정 내용을 이야기해 왔고 금융당국 수장들이 ‘KB 사태’로 혼선을 빚기 전까지 제재심 결정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KB 사태’ 당시 제재 결정의 모든 과정이 공개되면서 누가 피해를 봤는지 따져보자. 제재의 근거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 관료들, 이로 인해 국회의 질타를 받게 된 그들이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국민은 반대로 별다른 설명 없이 징계 수위를 높이는 당국을 보면서 제재 절차가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국은 국민과의 소통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린 것이다.

양지가 음지가 되면 합리성보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금융당국의 제재 절차는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간이다. 감추려 하기보다는 ‘금감원의 구형-금융위의 판결’이란 형식으로 확실하게 선을 긋고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개 이후에는 국민들이 제재 내용을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억울하게 제재받는 곳도, 제재를 피하고자 돈으로 로비하는 곳도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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