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경제]①정부 지갑 속 달러 비상금

외환 위기 후 보유 비중 지속 증가 ‘세계 7위’
얼마나 더 쌓아야 하나..적정 규모 놓고 논란도
  • 등록 2012-05-15 오전 7:54:30

    수정 2012-05-15 오전 7:54:3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15일자 16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신상건 기자] 1997년 당시 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르고, 그 해 10월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자 외국인은 우리나라에서 외화를 챙겨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환율은 800원에서 2000원대로 껑충 뛰었고,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는 외국에 갚을 돈을 빌리지 못해 외화 부족에 허덕였다. 당시 환율 방어와 외화자금을 지원하며 외화보유액을 소진한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어느새 즉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가용 외환은 89억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 이를 해결했다. 환란의 파고를 경험하고 1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지난달 말 현재 한국은행 통계상 집계된 외환보유액은 3168억달러. 1997년 12월 말 보유액 204억달러와 비교하면 당시보다 15배 이상 불어났다. 현재 세계 7위 수준이다. 외환위기로 달러 유동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외환보유액은 매년 증가 추세다(그림1). IMF 구제금융을 졸업하던 2001년 말 외환보유액은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05년에는 2000억달러를 웃돌았다.   고비도 있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환율 방어와 외화자금 지원에 나섰다. 2008년 9월 2397억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두 달 사이 392억달러나 감소해 2000억달러를 간신히 유지했다.   서봉국 외자운용원 운용기획팀장은 “리먼 사태 때 우리나라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외환보유액이 충격 완충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외환보유액은 다시 늘어나면서 작년 4월 처음으로 3000억달러를 넘긴 뒤 올 2월부터 3개월째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처럼 외환보유액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은 여전히 안정적인 외화 유동성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외화 자금은 언제든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이 모자랄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이중 안전장치를 꾸준히 마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달 3일 정부와 한국은행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및 중국, 일본과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재원 규모를 현행 1200억달러에서 2400억달러로 확대키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우리나라는 필요하면 최대 384억달러까지 돈을 더 꺼내 쓸 수 있다.   ‘외환 트라우마’를 잠재우기 위한 안전장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외환보유액을 쌓아야 하는 걸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던진 화두는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에 논란을 일으켰다. OECD는 4월 말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증가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한국은행은 적정 외환보유액의 명확한 기준은 없는 만큼 내부 판단에 따라 그 수준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여러 가지 외부 분석이 있지만 어느 한 기준을 정해놓고, 금액을 맞추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적정 규모에 대한 이론적 산출 방법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지표접근법과 외환수요함수를 토대로 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수요행태로 보는 행태방정식 접근법 등이 있다.   일각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단기외채를 감당할 만한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랏빚뿐만 아니라 급작스레 빠져나갈 수 있는 초단기자금의 속성 등을 고려해 그 수준을 함부로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윤만하 전 한국은행 외화자금국장은 최근 한 기고문을 통해 “한 나라가 급하게 갚아야 할 빚은 단기외채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의 주식투자금처럼 순식간에 이동하는 초단기자금도 있다”며 “보유 외환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허리띠 졸라가며 모아둔 식량”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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