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연고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지인들이 찾아오면 함께 배를 타고 바다 낚시를 하며 사는 것이 꿈이다. 이미 제주도에 자그마한 땅도 마련해 뒀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그는 현재의 직장까지 포함해 딱 한 번 이직했다. 전 직장에서 그는 잘 나가는 과장이었다. 밤낮없이 일만 했다. 동기들보다 진급도 빨랐다. 미국지사로 발령 예정돼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회사는 새로 설립되는 계열사로 발령냈다. 청천벽력이었다.
하지만 군말없이 회사를 옮겼다. 주변에서는 안됐다고들 했다. 개의치 않았다. 또 다시 일에만 몰두했다.
맥이 풀린 아내는 매일 밤 늦게 귀가하는 그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때 제안한 것이 제주도였다. "앞으로 이 회사에서 딱 10년만, 그렇게 미친 듯이 일하게 해줘. 그 다음부터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또 나를 위해 살께". 그의 '제주도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제주도 프로젝트가 시행되기까지 앞으로 5년여 정도 시간이 남았다.
소주잔을 건네며 그에게 물었다. "요즘 같은 때 굳이 상장해야 했냐"고.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믿는다"였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그의 회사는 펀더멘탈이 좋은 회사다. 설립 2년만에 기술력과 품질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도 현재 5위다. 물론 실적도 훌륭하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아무리 회사가 좋아도 투자심리가 급속히 악화된 마당에 상장 카드를 꺼내들었으니, 리스크는 온전히 회사의 몫이었다. 결국 예상 공모희망가를 대폭 낮춰 상장했다. 자금이 꼭 필요했기에 눈물을 머금었다.
그는 "우리 회사엔 나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나의 직급에만 30명이 넘는다. 난 이 저력을 믿는다"고 했다. 그는 자사주를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5년 뒤 회사를 떠날 때 그의 회사 주가가 지금의 10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에겐 참 좋은 기업들이 많다. 숫자상이나, 기업가치로나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기업들이다. 어려운 시기를 오로지 기술력과 품질로 뚫은 그들이다. 이런 기업들을 향한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실망스럽다.
투심(投心) 운운 하지만, 최근 시장의 움츠림은 너무 과도하다. 기업이 뿌리 내릴 수 있는 시장, 기업에 대한 시장평가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시장이 필요하다.
술자리를 파할 때 그가 말했다. "나는 믿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며 "하나는 우리 회사 주식가치가 5년뒤 10배 이상 올라 있을 것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그래서 내가 마음 편히 제주도로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그 때 쯤이면 우리 시장도 10배 더 성장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