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강신우 김응열 기자] 대기업 전기요금 부담이 24일부터 10% 이상 늘어난다. 대기업이 2022년 에너지 위기 여파로 쌓인 한국전력(015760)공사(한전)의 41조원 적자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산업계는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2년 연속 산업용 요금 차등 인상 결정이 우리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산업용(을) 전기요금 16.9원/㎾h 인상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과 김동철 한전 사장은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인상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에 대한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1킬로와트시(㎾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6.9원(10.2%) 올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산업용(갑) 요금은 164.8원에서 173.3원으로 8.5원(5.2%)으로 각각 올린다. 일반 가정이 쓰는 주택용과 소상공인 등이 쓰는 일반용, 농사용 요금은 동결했다.
|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
정부가 민생 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와 전기요금 현실화를 저울질한 끝에 내놓은 결과다.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내는 대상은 44만호로 전체 한전 고객(2500만호)의 1.7%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대용량 전기를 쓰는 만큼 전기 사용량 비중은 과반 이상(53.2%)이다. 이번 산업용 요금 인상만으로 한전의 전기 판매요금이 평균 5%가량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한전의 연 매출이 대략 4조5000억원 전후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최남호 차관은 “발전 연료비를 비롯한 원가 변수가 있기에 정확한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인상으로) 한전의 전반적인 재무구조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 현실화 방안을 놓고 고심해 왔다.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발전 연료인 천연가스 가격이 평소의 3배 이상 뛰었고 그 부담을 공기업인 한전과 한국가스공사(036460)가 떠안으며 재무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1~2024년 상반기의 누적 적자가 41조원에 이른다. 총부채 역시 올 6월 말 203조원까지 불어났다. 한전이 부담해야 할 연간 이자만 4조4000억원(2023년 기준)에 이른다. 한전이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회사채 누적 잔액도 79조원으로 내년 초 다시 한번 법정 발행한도 초과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電 내년 전기요금 3000억 늘어날 듯그러나 이번 차등 인상 결정으로 기업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 산업용(을) 전기요금 부과 대상 44만호 각각의 부담은 평균 연 1억1000만원 수준이지만 기업에 따라 그 부담이 연 수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전의 자료를 토대로 추계한 지난해 전기사용 상위 20대 기업의 총 전기요금은 12조4430억원이었다. 이번 10.2% 인상에 따른 추가 부담이 1조2400억원에 이르리란 것이다. 특히 지난해 약 3조2640억원(추산치)의 전기요금을 낸 삼성전자(005930)는 내년 3000억원 이상을 더 내야 할 수 있다.
| (오른쪽부터)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과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평균 9.7% 인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
|
산업계는 요금 인상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2년째 산업용 요금만 차등 인상한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요금 인상 자체는 불가피했으나 대기업 차등 인상으로 어려운 우리 산업계 경영활동이 더 위축하게 된 상황”이라며 “원가주의 기반 전기요금 결정 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올리는 건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 전반의 모든 전기 소비자가 함께 비용을 분담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시 “뿌리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의 심각한 경영 악화가 우려된다”고 논평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내년 초 한전 회사채 발행량 한도 초과를 막아줄 뿐 한전의 근본적 재무구조 개선에는 부족한 수준의 결정”이라며 “원가에 못 미치는 주택·일반·농업용 요금은 그대로 두고 이미 원가 이상인 산업용, 특히 대기업에 초점을 맞춰 요금을 올린 건 합리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 차관은 “민생이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부분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고통 분담을 맡기게 된 것”이라며 “마음이 무겁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6개국 중 우리 산업용 전기요금이 26위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