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들은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를 공개하는 거라고 했고, 사람들은 정의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재를 하는 유튜버들에게 열광했다. 사적 제재를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피해자는 고통 속에 사는데 가해자들은 잘 사는게 말이 되냐며 반박했고, 심지어 피해자를 대리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가해자 공개에 피해자가 동의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자 당신들은 지금까지 피해자를 위해 뭘 했냐며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향해서도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들은 피해자를 앞세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했다.
그러나 뒤늦게 알려졌다시피 가해자 공개에 피해자는 전혀 동의한 사실이 없었고, 피해자의 허락도 없이 변조되지 않은 목소리가 공개된 것으로 드러났다. 너나 할 것 없이 정의감에 불타 ‘피해자’를 말하면서도 정작 피해자는 안중에 없었다. 이 사건이 재점화 되면서 피해자가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되며 다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지, 혹시나 논란 속에 피해자의 신상이 밝혀질 위험은 없는지 등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부조리한 현실에 화가 난다면, 진정 피해자를 위한다면 가해자들의 나락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데 멈추지 않고, 원인과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왜 잔혹한 사건이 그렇게 밖에 처리될 수밖에 없었는지, 현행법은 무엇이 문제인지, 그렇다면 앞으로 또 다시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3일, 피해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활동가의 대독을 통해 아픔을 이겨내겠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더불어 ‘이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의 말처럼 우리가 화를 내는 것에서 멈춘다면 부조리한 현실은 여전할 것이고, 결국 남는 것은 유튜버들의 늘어난 구독자 수와 신상공개된 가해자들의 고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