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달콤한 유혹에 멍드는 K-바이오

  • 등록 2023-05-08 오전 7:40:05

    수정 2023-05-08 오전 8:07:31

[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기술수출 혹은 투자 유치 소식은 주가를 들썩이게 하는 큰 이슈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구조와 무관치 않다. 국내 기업들의 신약개발 전략은 직접적인 상업화보다는 기술수출에 올인하고 있다. 상업화까지는 글로벌 임상 등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해 이를 감당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수출 계약 공시나 투자 유치 소식에 투자자들의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술수출 및 투자 계약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국내 기업의 플랫폼 기술과 유망 파이프라인을 살펴볼 때 꼼꼼히 따져보고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고 움직인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계약을 완료하고, 공식 발표까지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본 계약 체결까지는 돌발변수가 너무 많다. 성급하게 계약 사실 및 내용을 공개했다가 계약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설익은 계약 내용을 따지지도 않고 공시하거나 발표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기술수출 또는 투자 유치 계약 중 가장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는 텀싯(Term sheet), 기밀유지계약서(NDA) 체결 등을 호재성 이슈로 공시 또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어서다.

바이오시밀러와 경구용 인슐린을 개발 중인 A기업은 텀싯 체결을 공시해 드라마틱한 주가 상승을 끌어냈다. 2021년 5월 3일 경구용 인슐린 2000억 투자 유치 추진 소식이 알려진 뒤 회사는 하루 뒤인 4일 중국 파트너사와의 전략적 제휴 체결 소식을 알렸다. 한 달 뒤인 6월 2일 텀싯 협의를 언급했다. 올해 2월 3일과 3월 31일에는 각각 바인딩 텀싯 협의, 바인딩 텀싯 체결 합의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바이오시밀러 관련해서도 지난해 11월 해외 제약사와 5000만 유로(약 690억원) 규모 바인딩 텀싯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2건의 바인딩 텀싯 소식은 주가에 영향을 끼쳤다. 해당 기업 주가는 지난해 4월 11일 3만4400원에서 올해 4월 19일 9만4200원으로 올라, 약 1년만에 174% 폭등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은 의문을 품는 투자자들의 문의에도 “파트너사와 순조롭게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언급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주가는 이날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4월 28일 경구용 인슐린 바인딩 텀싯을 생략하기로 했다는 공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년간 투자자들을 기대치를 높였던 텀싯 이슈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기업은 물론 K-바이오 신뢰도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악습이라는 지적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텀싯을 공시하는 경우가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하며 “텀싯 같은 초기 단계 상황을 공시하는 것은 거래소에서 제재해야 한다.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국내 바이오 산업에 전혀 도움되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설익은 계약으로 띄운 주가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편법이 아닌 실체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려 정직하게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만이 기업은 물론 K-바이오 글로벌 행보에 부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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