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간까지 4년…“동남아권 문학 꼭 알리고 싶었다”

[인터뷰]조영수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
동남아문학총서 시리즈 기획 맡아 고군분투
코로나 출장길 막혀, 난관 있었지만 숨겨진 보석 발굴
전통·현대 갈등 속 개인 선택 묻는 작품 골랐다
일회성 사업 아냐, 지속 소개가 재단의 목표
  • 등록 2022-03-16 오전 6:20:00

    수정 2022-03-16 오전 6:20: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기획부터 출간까지 꼬박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해외출장은 유예되거나 취소됐으며, 매 과정마다 난관에 부딪혔다.

조영수(76)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동남아문학총서를 국내에 처음 선보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마치 숨겨진 보석을 발굴해 세상에 소개하는 기분이었다”면서 이같이 표현했다. 그간 국내에 동남아권 문학을 들여온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모든 과정이 난관이었고,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조 이사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작품 결정부터 저작권 계약, 번역자 선정 등 모든 과정들이 순조롭지는 않았다”면서도 “경제적으로 뒤처진다는 이유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동남아권의 빛나는 문화를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시리즈를 기획한 조영수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사진=한세예스24문화재단).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올초 동남아 근·현대 문학을 묶은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시리즈’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베트남 소설 ‘영주’(2015)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1939), 태국 소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1929) 등 총 3권이 총서 시리즈의 첫 신호탄이다.

재단의 모태인 의류수출기업 한세실업의 생산법인이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지역에 거점을 둔 것이 이번 구상에 밑그림이 됐다. 기획을 맡은 조 이사장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원,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이자, 한세실업 김동녕(77) 회장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는 “모두 전통과 현대의 갈등 속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공통의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라면서 “시대상을 잘 반영한 현대 작품을 선별하고, 각국 특성과 국민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골랐다”고 선정 기준을 밝혔다. 이어 “각국의 히스토리가 좀더 피부에 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 간 경제적 협력 관계를 넘어 문화적 교류를 공고히 다지다 보면 정서적 교감도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도 확신했다. 작품 선정을 위해 투입된 전문가들만 여럿으로, 일반 대학 동남아시아 어문학과 교수진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등을 찾아 수소문했다.

소설 ‘영주’는 지금 베트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도빅투이의 대표작이다. 한국 초역된 작품은 베트남 산악지대 소수민족인 몬족의 문화와 관습, 역사를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왼쪽부터 베트남 소설 ‘영주’, 인도네시아 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태국 소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 표지(사진=예스24).
인도네시아 국민 작가 함카가 쓴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은 젊은 연인의 삶을 통해 미낭카바우 지역의 부조리한 전통과 관례를 고발하는 동시에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소설이다. 오랜 관습을 바꾸려 분투하는 인물들이 인상적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현대 서양문화를 경험한 왕족 작가 아깟담끙 라피팟이 집필한 태국 현대소설의 시초다. 당시 지식인 청년이 희망하던 고국의 모습을 반영, 상류·하층민의 삶과 세속적 풍경을 정밀하고 과감하게 그린 작품이다.

국내 네트워크가 활발하지 않아 적절한 번역 역자를 구하는 과정도, 저작권 계약을 위한 에이전시를 구하는 과정도 큰 난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동남아 문화권의 문학작품들은 우리에게 낯선 감이 있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가장 가깝게 접근해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문학작품”이라면서 “이번 총서 출간이 동남아 지역 문화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이번 총서 사업을 통해 동남아 문학을 국내 문단의 메인스트림(주류)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그는 “낯설고 새로운 동남아 문학을 국내에서 수용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미 다음에 출간할 작품 선정 작업도 진행 중이다. 조 이사장은 “이번 작업을 시작하면서 사업 이름에 ‘총서’라는 단어를 붙였다. 일회성 사업 아니다”면서 “총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남아 10개국의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발굴해 지속적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 재단의 목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어떤 작품이 선택되고, 또 어떻게 번역되는지 꾸준히 지켜봐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 하나하나가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겁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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