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잘 아는 러시아는 압박에 물러서지 않고 있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두 나라의 신경전에 유가는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미 미국 휘발유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초고유가에 따른 고통이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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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독자 러 원유 금수 결단
바이든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러시아산 원유 금수 방침을 밝히면서 “동맹국들과 긴밀한 협의 이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압박한다는 목표를 위해 우리는 단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조치는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안이지만, 유럽 동맹국들과 논의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최후의 보루로 인식될 정도로 러시아 경제에 주는 피해가 클 전망이다. 주요 원자재 생산국인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산 원유가 시장에 풀리지 않으면 수급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러시아의 통상 하루 원유 공급량(원유 관련 제품 포함)은 700만배럴에 가까운데, 이게 사라질 경우 대체지는 마땅치 않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이미 배럴당 140달러에 근접한 유가가 추가 폭등할 수 있는 셈이다.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미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상황이 난처해진 건 미국의 주요 동맹인 유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많은 동맹국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걸 이해한다”고 말했다. 유럽 일부 나라들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면 곧바로 수급상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재에 난색을 표해 왔다. 유럽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25%에 달한다. 천연가스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0%다.
영국만 이날 미국의 제재에 동참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크와시 쿠르텡 영국 산업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영국 수요의 8%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대체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러 신경전에 휘발윳값 폭등세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레벨인 배럴당 120달러 이상에서 매수세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원유시장은 사실상 패닉 상태다.
이에 미국 휘발유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 전역의 보통 휘발유 평균가는 갤런당(1갤런=3.785리터) 4.173달러를 나타냈다. 1년 전보다 50.4% 치솟은 수치다. 2008년 7월 당시 기록한 이전 최고치(갤런당 4.114달러)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기름값이 가장 비싸다는 캘리포니아주 모노카운티의 경우 갤런당 6.023달러까지 폭등했다. 미국은 자동차가 곧 발이라는 점에서 휘발유 가격 상승은 가계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국제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만큼 휘발유 가격 오름세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대러 제재를 발표한 자리에서 “이번 조치로 유가는 더 오를 것”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휘발윳값뿐만 아니다. 상품가격 폭등은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초래하고 있다. 물가가 너무 뛰어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각종 금융자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미국 뉴욕 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올해 들어 18.2% 하락한 게 대표적이다. 이 역시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소비 여력을 감소시키는 악재다.
울프 리서치의 크리스 세니예크 수석투자전략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 원자재 가격 급등, 인플레이션 우려, 불확실한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 전망이 경기 침체 공포를 키우고 있다”며 “이는 주식을 급격하게 매도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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