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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릴 만큼 충청권의 대표 주자로 통했다. 충남 홍성 출신인 고인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했다. 치안 분야로 옮겨 최연소(31살) 경찰서장과 충남·북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후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충남지역(청양·홍성)에서 유일하게 당선돼 주목받았다.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며, 신한국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중책을 두루 역임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데 반발해 지사직을 던지며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7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지만, 이후 정치 활동은 원로로서 이따금 현안 관련 조언을 하는 데 그쳤고 정계복귀는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의 적극적인 출마 제의에도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빈소는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이날 오후 4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6일, 장지는 충남 청양 비봉면 양사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백연 씨와 아들 병현·병인 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