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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502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 1995년 벌어진 삼풍백화점 참사로 인한 인적 피해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하지만 그 후 9년만인 2004년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위령탑은 1998년 사고 현장으로부터 6킬로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말끔하게 세워진 아파트와 엉뚱한 곳에 세워진 위령탑. 우리에게 참사의 기억들은 아파도 보존되고 기억되기보다는 애써 빨리 지워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는 걸 이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게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반발과 망각의 뒤편에서 어른거리는 괴물 같은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아파트’다. 유지태의 발언에 ‘강력한 유감’이 표명된 건 그것이 혹여나 강남 한 복판 노른자위에 있는 아파트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아파트는 도시가 중심이 된 우리네 삶에서 그 삶의 가치를 가격으로 드러내는 지표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그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 그 곳에서 어떤 재개발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누군가 흘렸을 지도 모를 피눈물은 애써 지워야할 기억들이 된다. 그런데 이런 기억조차 지워버리는 ‘아파트 재개발’은 우리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2011년 제작 방영된 다큐 영화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 용산에서 벌어졌던 참사를 소재로 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들이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사망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그 비극의 장소에는 당시에 대한 기억이 말끔하게 지워져 있다. 그 곳에는 43층짜리 주상복합 빌딩이 세워졌다. 그 곳의 초호화아파트는 최고가가 무려 60억을 호가한다고 한다. 거의 10년 간 유족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담은 플래카드를 내걸며 싸웠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했다. 이렇게 마법 같은 망각이 가능한 건, ‘아파트 집값’이라는 뿅망치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집값 떨어진다’는 그 한 마디는 누군가에게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아픈 기억을 애써 덮어버리는 마법이 되곤 하니 말이다.
최근 들어 답답한 도시를 벗어난 지역의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이 생기곤 있지만 아파트에 대한 대중들의 욕망은 여전히 뜨겁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이 그렇고, 젊은 세대들마저 영끌해서 아파트 투자(?)에 나서는 현실이 그렇다. LH 사태로 인해 정국이 들썩이고 민심이 흉흉해진 것도 얼마나 아파트로 대변되는 집에 대한 애증이 대중들에게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아파트에 대한 열기에 가려진 재개발과, 그 재개발이 야기하곤 하는 누군가의 눈물을 과연 우리는 염두에 두고 있을까. 무수한 안타까운 생명을 담보로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의해 우리의 기억도 재개발된 건 아닐까.
아파트로 대변되는 재개발의 시스템은 비극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원주민들의 비극이 벌어지고, 아파트가 세워진 후에는 바로 그 아파트에 의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비극의 기억이 지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지워진 기억은 또 다른 재개발로 이어진다. 위령탑을 심지어 집값을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로 치부하고 애써 비극을 지워내려는 ‘기억의 재개발’이 더 큰 문제다. 오는 6월29일은 삼풍백화점 참사의 26주기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