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이번주 전세계 증권가를 뒤흔들었던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로빈후더’라 불리는 미국의 개인투자자들일 것이다. 월가의 헤지펀드를 혼내주자고 봉기했던 이들은 결국 친정인 증권사 ‘로빈후드’에 배신당하며 일보 후퇴한 양상이다. 로빈후더의 봉기는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이번주 증시인물은 로빈후더를 통해 알아본다.
|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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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25~29일) 미국 시장에서 게임스탑은 최고 483달러까지 오르며 폭발적인 주가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18.84달러에 장을 마쳤던 걸 감안하면 2000%가 넘는 주가 상승세를 보였던 셈이다. 게임스탑은 지난 27일(현지시간) 거래대금이 296억달러나 됐는데, 이는 테슬라(224억달러)나 애플(188억달러)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보다 훨씬 큰 수준이었다. 이날 하루에만 게임스탑은 무려 134.84%나 급등했었다.
게임스탑 주가의 광란은 미국의 개인투자자들의 봉기(?) 때문이다. 게임스탑은 오프라인 게임업체다 보니 코로나19 피해주로 꼽히며 주가가 많이 하락했던 종목이다. 그러나 경기 반등 기대감에 단숨에 2배나 오르면서 공매도 투자자의 표적이 됐다. 시트론(Citron) 등 공매도 투자자들은 “지금 주가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공매도에 나섰고, 개인들은 SNS ‘레딧’에 모여 작당해 게임스탑의 주가를 올리기 시작한다. 숏스퀴즈에 몰린 기관들과 이를 부추기는 개인투자자들의 대결이 벌어지는 가운데 게임스탑의 주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미국 개인투자자들의 감정은 한국 개인투자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의 투자자들이 기관과 외인의 매도세에 분노하며 ‘동학개미운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미국 투자자 역시 공매도 하는 기관에 혼쭐을 내주자는 심정으로 이번 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동학개미운동이 주가를 상승시키며 윈윈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반면, 로빈후더들의 봉기는 자기파괴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공매도로 손실을 본 헤지펀드의 경우 애초 레버리지를 일으켜 공매도에 나섰었는데, 로빈후더의 매수세로 주가가 상승하자 추가 담보를 요구받으면서 반대매매에 몰렸다. 이런 헤지펀드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갖고있던 다른 종목들을 팔아치우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27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2.57% 떨어진 채로 마감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이 로빈후더에게 물리적 압력(?)을 가하면서 커졌다. 28일(현지시간) 미국의 로빈후드는 게임스탑 등 최근 숏스퀴즈를 노리고 급등하고 있는 종목들의 신규매수를 원천 차단했다. 새 매수세가 들어오지 않자 게임스탑은 무려 44%대 하락하며 장을 마친다. 마치 친정이 로빈후더들을 버린 모양새다. 이에 로빈후더들은 로빈후드 어플을 삭제하고 다른 증권사 계좌를 트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헤지펀드가 시장을 들썩이는 건 가능하고 로빈후더는 안 되냐’며 분통을 터뜨리고도 있다. 미국판 ‘기울어진 운동장’론이다.
| 한국시간으로 29일 오후 6시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에 Bitcoin이라고 쓴 모습(사진=일론 머스크 트위터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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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여기에 불을 붙였다. 한국 시간으로 29일 오후 6시경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 프로필에 ‘Bitcoin’이라는 한 마디만을 남겼다. 비트코인은 ‘탈 중앙화 자산’으로 어떠한 권력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성격의 자산이다. 봉기를 일으킨 로빈후더들이 기존 금융 권력인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비트코인에 주목하게 된 이유다. 29일 오후 비트코인은 이 영향을 받아 한 때 16%대 급등하기도 했다. 앞서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Gamestonk!!’라며 이번 봉기가 시작된 레딧 사이트를 포스팅하기도 해 눈길을 끈 바 있다. Gamestonk는 게임스탑에 ‘맹폭격’을 의미하는 ‘stonk’를 합친 단어다. 머스크는 테슬라가 공매도 세력에 여러 차례 수난을 당해온 탓에 공매도 세력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게임스탑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는 애초 헤지펀드에 대한 반발심으로 시작한 측면이 크다. 그런데 시스템이 로빈후더를 억누르는 모양새가 되자 헤지펀드와 금융시스템에 대한 로빈후더들의 반발은 더 극심해지는 상황이다. 이미 미국 하원은 게임스탑 사태에 대한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힌 상황. 게임스탑 사태가 어떻게 종결이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