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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당선자들 가운데 주목받는 낙선자가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4위로 서울시장에 낙선한 녹색당 신지예(27)씨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출마해 원내정당인 정의당의 후보를 제치고 8만 2874표를 얻어 4위에 올랐다.
신씨는 “선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도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을 뿐”이라며 “모든 존재가 평등한, 진정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낙선 소감을 밝혔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신씨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전략적 페미니스트라고? 내 삶이 페미니즘 그 자체!”
스물여덟의 그녀를 냉엄한 정치의 세계로 떠민 건 분노였다. 신씨는 “정치인들이 굉장한 권력이 있음에도 최근 불법촬영 등 여러 여성 의제에 대해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것에 답답했고 분노를 느꼈다”며 “정치가 어디까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 보여주고 싶어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앞세운 신씨의 출마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신씨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진 청년 주거문제, 소수자 및 청소년 인권문제 등은 언급해왔어도 여성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한 적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년 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출마 때만 하더라도 신씨는 페미니스트를 표방하지 않았다.
신씨는 “페미니즘을 득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쓴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진짜 그랬다면 오히려 표가 더 많이 나왔어야 한다”며 “나는 내 삶 자체가 페미니즘 그 자체이며 당 내에서도 페미니즘 정책을 꾸리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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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뽑히긴 했지만 사실 신씨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기탁금을 포함해 선거운동에 드는 최소한의 비용인 1억 5000만원을 당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이 금액을 과연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모금을 했는데 모였다. 녹색당이 모아본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며 “그만큼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선거에 나선 신씨가 마주한 건 거대한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였다. 신씨는 “대학가 주변으로 연설을 가면 젊은 남성들이 욕을 하는 등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신씨는 “페미니즘은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을 드높이자는 게 아니라 가부장제를 없애고 성차별을 해소하자는 얘기”라며 “이런 당연한 얘기조차 성대결 양상으로 번지는 것은 다 정치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가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소수자·약자들이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다툼과 반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신씨는 그 예로 정부의 불법촬영물 삭제 등 정책을 비판했다. 신씨는 “여성가족부가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사업을 지난 4월부터 하는데 1년짜리 단기사업에다 한 번도 관련 일을 해보지 않은 여가부 산하 위탁단체가 일을 하고 있다”며 “이걸론 절대 불법촬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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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에게 페미니즘이란 여성인권 운동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사상이다. 여성에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페미니즘적 인식이,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남녀의 혼인으로 이뤄진 가정’, ‘가부장제’ 등에 따르지 않는 개개인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 까닭이다.
신씨는 “페미니즘은 약자인 여성을 지원해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단순 성대결을 넘어 이분법적인 성구분이 사라지는 시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여성과 남성의 결합을 ‘정상가구’라고 부르며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동거하는 커플이나 비혼자들도 다양한 삶속에서 다양한 주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꿈꾼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선 아쉽게 낙선한 신씨지만 앞으로도 페미니즘이 이뤄지는 사회를 꿈꾸며 정치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오래된 우화 중에 벌새 얘기가 있어요. 숲에 불이 나서 동물들이 다 피난길에 오르는데 벌새 한 마리가 입에다 물을 물고 불을 끄러 가는 얘기입니다. 코끼리가 ‘어차피 가봤자 불 못 끈다’해도 벌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라고 하면서 갑니다. 그런 벌새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벌새같은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