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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리 실향민들은 고향 음식 생각이 나면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 그런데 요즘 식당에 가면 앉을 곳이 없어. 젊은 세대들이 늘 줄을 서 있더라고. 냉면이 이제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식이 됐구나 싶어.”
평안남도 대동군이 고향인 김병삼(86)씨는 실향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 우래옥, 필동면옥, 평래옥, 평양면옥 등 유명하다는 평양냉면 식당을 가리지 않고 찾는다.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지만 김 씨에는 늘 한결 같은 맛이다. 죽기 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고향’의 맛이다.
김 씨는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평양공연을 위해 찾은 우리 예술단과 관련한 기사들을 보면서 또 한 번 고향을 떠올렸다. 예술단이 평양의 유명한 평양냉면 식당인 옥류관을 찾았다는 소식에 오래 전 추억에 빠졌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김 씨는 “어릴 적 어른들을 따라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은 기억이 있다”며 “북에 있을 때 냉면은 지금처럼 값비싼 ‘사치 음식’이 아니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남한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북에서처럼 냉면을 즐길 수 없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남한에 정착해 냉면 전문식당을 열면서 다시금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냉면도 조금씩 맛이 달라지기는 했겠지만 내게는 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없는 맛”이라고 강조했다.
냉면은 남한에 내려오기 전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곡식이 잘 자라지 못하는 평안도 일대에서 유일하게 잘 자라던 곡식이 메밀이었다. 메밀로 만든 국수에 동치미 국물에 닭고기, 소고기로 만든 국수를 섞어 먹었다. 집마다 ‘분틀’(국수틀)이 있어서 식당에 가지 않더라도 냉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김 씨는 “밤이 긴 겨울 일찍 저녁을 먹고 자기 전 배가 고파지면 야참으로 냉면을 먹었다”며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오늘 밤은 누구네 집에서 국수 해먹자’며 모여 먹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냉면을 먹는 방법이 특별히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 씨는 “옛날에는 조미료가 없어서 냉면에 양념을 안 해서 먹었을 뿐”이라며 “사람 입맛에 따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대로 냉면을 먹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번에 가수들이 먹은 옥류관 냉면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다대기 같은 양념이 없었다고 들었다”며 “북에서도 시대 변화에 따라 음식을 먹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번 평양공연을 보면서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꼈다. TV로나마 고향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남북 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흐르니까 실향민으로서는 기대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잊지 못하는 고향의 맛을 죽기 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게 꿈이다.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유가 딴 게 없잖아. 이북에 있는 고향에 한 번 가고 싶어서 여태까지 살고 있는 건데.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