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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주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로 알려진 재야운동가 백기완(85)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째부터 제창이 금지됐으니 무려 9년 만이다.
제창 부활 소식이 알려진 이날 이데일리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 소장을 만났다. 백 소장은 “그저 노래를 못 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5·18 정신을 학살하고자 하는 전두환-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만행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대통령이 제창을 지시한 것은 잘 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제 시작이다.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하도 망쳐놔서 바로 잡아야 할 게 한두 가지 아닐 것”이라고 새 정부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옥중서 스스로를 달구질 한 詩, 민중의 노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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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문을 당해 허리는 망가졌고, 두 무릎은 퉁퉁 붓고 곪아 꿇을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연필도 종이도 없어 뭘 적을 수도 없던 시절, 찬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에 매달린 15촉 전구를 보고 있노라면 분하고 너무 약이 올랐다고 백 소장은 회상했다.
“그때마다 매일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웠어. 나를 일으켜 세우는 비나리를 하는 거야. ‘너도 한때 씨름도 잘하고 술도 잘 먹었잖아. 너도 젊은 날이 있었어. 용기를 내 이 자식아’ 하고는 내가 나한테 달구질 하는 거야.”
“나만 달구는 게 아니라 아울러 세상을 을러대는 거지. ‘이것 봐. 기죽지 말어. 역사라는 것은 부정한 자들의 싸움이 역사야’하곤 천장을 보고 매일 읊었지.”
△“원작자라고 한 적 없어”…예술은 민중과 역사의 것
가사의 원작자인 백 소장은 이 노래에 대한 소유권도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더러 원작자라고 하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소유하는 건물과 달라. 자본주의적 관계가 아니지. 민중의 것이고 역사의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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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도 매번 참석…역사 소재 장편 서사시 집필 중
그는 여전히 약자를 위한 집회 현장이라면 늘 맨 앞에 앉아 있다. 이번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촛불집회 때도 단 한번 빠진 적이 없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늙은이라 뒷간(화장실)을 자주 가야하는데 전날이면 물을 안 먹었지. 개인적 사정이 유별났지만 어려움을 참으면서 촛불을 들었다. 왜곡하지 말고 참된 촛불정신이 사회적, 문화예술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 온몸이 촛불이 돼서 현장의 제일선에 설 거야.”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산 자여 따르라’다.“비록 초라하게 늙었지만 가만히 있지 않지. 조금이라도 편해지려 하면 부패해. 또 금방 잊는 거지. 예술창작의 기본은 긴장감이야. 정치도, 철학도 긴장감이 없으면 썩지.”
백 소장은 요즘 장편 서사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비참한 역사적 사실이 소재다. 이달 말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백 소장은 “이제 늙어서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 걸레를 쥐어짜듯이 짜 낸다”고 말했다. 묏비나리를 쓸 당시를 떠올리며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맑은 샘이 넘치는 이런 상상의 세계를 내가 갖고 있었나? 반문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인들에게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촛불도 들고 규탄시위도 나서더라. 그게 예술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때론 응원가로, 때론 노래방에서 불리는 것에 대해선 호탕하게 웃는다. “이 노래는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야. 노래라는 게 운동 시합하며 부를 수도 있고 술 먹다가도 부를 수 있어. 외로울 때 부를 수 있으면 더 좋고. 재미있게 봐주면 더 좋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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