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해 사모님, 진단서 한장이 면죄부였다”

진단서 감정 의사들 “허위 진단 가능성” 이구동성
유력인사·재벌만 빼주는 ‘진단서’…제도개선 필요
  • 등록 2013-05-29 오전 8:06:31

    수정 2013-05-29 오전 8:14:41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청부살인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대기업 회장 전 부인이 지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병원 호화병실에서 무려 6년간 호의호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형집행정지가 연장되도록 진단서를 써준 의사의 실명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의사 한 명의 진단이 형집행정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9일 이번 사건과 관련 환자의 진단서를 감정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환자가 장기간 형집행정지로 입원할 수 있었다는 데 의구심을 나타냈다. 허위 진단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했다.

한 의사는 “이 환자는 파킨슨병을 앓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나이롱 환자였다”고 말했다. 이 환자의 진료기록에는 파킨슨병 약 복용을 중단시킬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주치의는 ‘파킨슨병’으로 진단했다.

다른 전문가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모 의사는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지 5년이 지났고 검사상에도 아무런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이미 완치된 환자를 외과에서 관리하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진단서대로 12개 질환을 앓았다면 거동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의사협회는 현재 해당 의사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 이번 사태가 국민의 법 감정에 불을 지른 상황이라 쉽사리 잠잠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측은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다. 검찰이 수사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앞으로는 진료적정성평가위원회를 통해 형집행정지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전에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질환을 통한 형집행정지 제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고위층 인사, 재벌 등이 갖은 비난에도 의사 진단서를 근거로 형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었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진단서에서 주치의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병원에서 관리감독할 기전이 사실상 없다. 자본과 권력이 가진 고위층, 재벌이 영항을 행사하기 쉬운 구조다. 검찰은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사의 진단에 대해서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관리기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는 재산 분쟁 등으로 인한 강제 입원을 막기 위해 입원할 때 의사 2명 이상의 정신과 의사의 일치된 소견을 받도록 하는 법 개정이 추진 중인데, 형집행정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사협회 등을 통한 감정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송형곤 의사협회 대변인은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 받는 것도 문제지만,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는 것도 문제”라면서 “의사의 진단서가 제 3자의 객관적 의견이 반영될 수도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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