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공업 사관학교 1기생들이 강의를 받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
|
[거제=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배를 고정시킬 때 쓰는 것을 뭐라고 했죠?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지난 14일 찾은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중공업사관학교’의 강의실에서는 선박설계를 위한 기초 수업이 한창이었다. 중공업사관학교는 대우조선해양이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고졸 관리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올초부터 운영을 시작한 교육기관이다. 최근 산업계에서 일고 있는 고졸 채용을 주도하고 있는 요람이기도 하다.
이날 강의주제는 선박 부품들.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똘망똘망한 교육생들의 모습은 여느 대학과 다름 없었다. 이들은 연봉 2650만원을 받지만 1년 내 전문교육과정에 집중한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선박설계부터 경영, 영어실습, 입문교육, 명사 특강 등 유명대학의 커리큘럼이 부럽지 않다. 연세대 이호욱 교수(경영학), 부산대 윤현식 교수(조선공학) 등으로부터 경영ㆍ경제학, 조선해양공학, 사학, 실무OJT, 영어 등의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양준혁 전 프로야구 선수, 허영호 산악인 등 등 평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명사들이 꿈과 열정, 도전과 극복 등을 주제로 한 특강으로 이들의 꿈을 북돋았다.
| 중공업사관학교 1기생 변민지(왼쪽부터)·김보선·이재황씨가 강의실 입구에서 밝게 웃고 있다. |
|
1기생인 이재황(19)씨는 “특성화고교에서 호텔업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중공업사관학교 면접을 보게 됐는데, 취업이 확실하게 보장되는데 이끌려 진로를 바꾸었다”며 “무엇보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변민지(20)씨는 “대학생활의 낭만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것도 3개월 정도였다”며 “등록금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에 지쳐있는 친구들을 보면 선택을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부모님 친구들이 부러워하면서 입학 방법을 물어 볼 정도라고 했다.
김보선(20)씨는 “무엇보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잠재력을 인정받아 먼저 전문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하고 개성있는 친구들과 여행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번 돈으로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도 대학생활 못지 않은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이어 “원래 광고쪽 일에 관심을 갖고있었는데, 배를 잘 만들어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일 역시 광고 못지 않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또래친구들이 막연한 장래를 고민하고 있을 때이지만, 이들의 꿈은 구체적이다. 조선업 관련 영업이나 경영, 선박설계의 총괄지휘 등 한 발짝씩 현실을 접하고 경험하면서 진지하고 밝은 모습들이다. 특히 모두 스스로 잘 해야 고졸 직원을 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책임감에 공부는 물론 생활에서도 모범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지난 1월 중공업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학한 학생은 총 104명. 현재는 101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꾼 학생,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자신의 또 다른 꿈을 찾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학생 등 3명이 입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101명의 학생들은 대우조선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욕이 대단히 강했다. 열정과 도전의식은 회사의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직원들의 따뜻한 시선·기대를 머금고 더 커지고 있다.
| 중공업사관학교 1기생들이 예체능 시간에 각자 연습한 악기로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
|
| 중공업사관학교 1기생들이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
|
| 이상엽 부장 |
|
중공업사관학교의 총괄지원하고 있는 이상엽 대우조선해양 인사총무팀 부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입사한 고졸 신입사원들이 나중에 회사의 핵심인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면서 “직원들이 신입사원 직무훈련(OJT)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이들이 빨리 배치되기를 바라는 부서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고졸 공채를 위해 작년 말부터 전국 700여개 고등학교를 임직원들이 직접 방문해 설명회를 했다. 생소한 시도였지만 지원 경쟁률은 32대1에 달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생산직이 아닌 사무·기술직에서 고졸직원을 별도로 뽑은 것은 최초의 시도였고, 특히 대졸 사원과 동등 대우 이상(연령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파격이었다. 이 부장은 “회사의 핵심 인재로 키우기 위해 성적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교육생들을 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출신 고등학교별로 모집분야를 이원화했다. 지난 10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사내대학 정식인가를 취득한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 공과대학’과 ‘설계·생산관리 전문가’ 과정 두 분야에서 채용을 진행하며 12월 최종 선발을 거쳐 내년부터 교육에 들어간다. 특히 1기생을 포함해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근무태도가 성실한 사람에 대해서는 회사가 학사나 석사 학위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중공업사관학교 1기의 경우 남학생은 군 문제를 해결한 뒤 3년간 전문 멘토를 지정해 실무부서에서 현장경험을 쌓게 된다. 이렇게 군 복무를 포함해 7년간의 교육을 마치면 고졸 정규직 사원들은 월급·승진 등에서 대졸 신입사원과 동등하거나 실무경험을 인정받아 더 높은 대우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