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정태선기자] ◇이해찬총리 관훈토론 기조
존경하는 언론인 여러분, 유서 깊은 관훈클럽의 토론회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관훈 토론의 자리에 서는 것이 이번으로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가 1998년 4월인데, 당시 교육부 장관으로서 ‘국민의 정부 교육개혁 방향’이란 제목의 토론을 했었습니다. 이번에도 보니 제목이 ‘참여정부의 비전과 국정운영 방향’인데 저는 관훈클럽에만 오면 ‘방향’을 이야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대통령께서도 국정연설에서 말씀하셨고, 저도 작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참여정부의 비전과 국정운영은 한마디로 ‘선진한국’ 건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나라를 반듯하게 만들고 선진국으로 가는 기반을 닦는 것이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인 것입니다.
선진국이란 경제적으로 풍요하기 만한 국가가 아닙니다. 선진국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체제, 공정하고 투명하며 경쟁력 있는 경제시스템, 원칙에 대한 합의와 사회적 약자에의 배려가 제도화된 사회시스템이 있는 나라입니다. 또한 자주적이면서 현실적이고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과 주체적이고 풍요한 문화 역량을 지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고 국가를 통합시킬 때, 비로소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다고 할 것입니다.
참여정부 2년의 공과에 대해 많은 토론과 의견이 있고, 물론 잘못한 점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비전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참으로 높이 평가받을만한 일도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열거했습니다만, 참여정부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탈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일반 시민이든 언론이든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완전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들 역시 여론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일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2년 동안 우리 정치체제가 좀더 민주화되고 선진화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올해 참여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경제 활성화에 있음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종합경제계획은 차질 없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월 14일까지 전체예산의 11.8%인 20조원이 집행되고, 18만 8천명에게 일자리 및 훈련기회를 제공하는 등 면밀하게 집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내수회복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규제 개혁 등 여러 면에서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곧 가시적 성과를 보일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경제 개혁 의지가 좀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참여정부의 경제 활성화 정책은 일부 기업에 특혜를 준다거나, 일시적인 경제부양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실현하고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인적자원 개발과 연구개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발굴과 지원 등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경제 활성화의 효과도 얻으려고 합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시키는 제도적 개혁 조치들이 일부 완화되거나 유예되고 있는 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해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지 과거의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경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선,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제시스템으로는 안되고 선진 경제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참여정부는 선진적인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환경과 강한 경쟁력을 가진 선진적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내려 합니다.
동시에 양극화의 완화가 필요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연두 회견에서 동반 성장이란 말씀을 하셨고, 지난주 국정연설에서도 지적하셨지만, 이 계층별, 지역별, 업종별, 기업규모별 양극화는 한국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성장과 분배 모두에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기반이 무너지고, 서민계층의 소비 여력이 없어지면 대기업이나 상위계층 역시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성장이 둔화되면, 분배 여력이 줄어들어 저성장-저분배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양극화를 완화하고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모든 계층, 모든 지역과 모든 기업을 위한 것입니다. 고성장-고분배의 선순환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상위계층, 대기업, 수도권 등 좀더 앞서가는 쪽이 양보를 해야합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부와 기업의 양보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 노조와 정규직들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한 발 양보가 미래의 열 발 전진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양보를 강제하거나 그럴 생각도 없고 또 지금 시대에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정부는 뒤쳐진 분야와 계층을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고 함께 선진경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을 뿐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국제 시장에서 한국이나 한국기업이 실제에 비해 30% 정도 저평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주된 이유가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전투적인 노사관계 등과 함께 바로 북핵 문제입니다.
앞의 두 가지가 선진 경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점차 해소 되어가는 것에 비해 북핵 문제, 나아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는 경제 논리를 통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북한이 여러 채널을 통해 6자 회담 개최를 위한 전제 조건을 요구하는 등 일견 북핵 문제가 꼬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는 북핵 불용,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국의 주도적 역할 견지라는 북핵 3원칙에 따라 북한 핵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왔습니다.
작년 대통령의 LA 발언과 한미정상회담에서 보듯이, 한미관계는 역대 그 어느 때 보다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오히려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동안 꾸준히 진행시켜온 남북 교류와 경협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에 알게 모르게 공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칙에 따라 차분히 대응해 나간다면,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 번영에 이바지하는 형태로 반드시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한반도 평화는 선진 경제 시스템을 가진 선진 통상국가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완결되고 선진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정과 투명, 그리고 원칙에 기반한 사회 통합, 국민 통합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지난 2년간 사회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심지어 편가르기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저는 사회 발전에 있어 갈등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맹목적인 화합보다는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이 사회 발전에 순기능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칙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서로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데 있어 공정성과 투명성을 잃으면 안되며 일단 합리적 절차에 의해 해결책이 제시되면 설사 전적으로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통합, 국민통합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참여정부는 정당한 요구, 사실에 근거한 비판에 대해서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또는 집단적 힘으로 밀어붙여 이익을 얻어내려는 일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법률과 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법률과 원칙에 의해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고 엄정하게 대처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역 균형 발전 역시 국민통합과 선진 한국 건설에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한 국가 안에 극단적인 불평등과 불균형이 존재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다면, 그 나라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해도 결코 선진국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런 나라는 극단적인 반목과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 풍요를 이룰 수도 없을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사회 안전망을 더욱 튼튼히 하고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통합된 힘을 바탕으로 선진한국 건설의 기반을 쌓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정부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더욱 잘 아실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실, 정부의 역할보다는 국민 여러분의 역할이 더욱 큽니다.
동시에 언론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저는 언론 역시 역사에서 공적인 책임을 부여받은, 일종의 역사적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 나라 성패의 공적과 책임 모두 언론이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언론인 여러분 모두가 역사의 책임을 느껴야 하며 스스로 공인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국가의 비전을 실현하는데 같이 나서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이상으로 제 기조 발언을 마치고 여러분들의 질의에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