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경기침체, 테러와의 전쟁, 문(門)을 뜻하는 영어단어가 바다 건너와서는 의혹 내지는 추문 등을 뜻하는 의미로 변질된 채 쓰이는 무슨 무슨 게이트... 2001년 한 해 동안 가장 자주 우리 입에 오르내렸던 용어들이 아닐까요? 절망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희망을 품으며 한 해를 달려왔고, 무언가 나아진 듯 하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기도 한 어정쩡한 기분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서 월드컵의 해인 2002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래에서 살펴 보겠지만 어려운 한 해를 보내면서도 한국 경제는 그럭저럭 선방한 듯 합니다만, 외환시장만큼은 연말을 몇 주 앞두고 불어 닥친 "엔低 태풍"의 영향으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로 한 해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환율이 오른 상태로 2001년을 마감하리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만 어차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새해 벽두의 환율 움직임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또 나름대로 짚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정리해 봅니다.
◇금년에도 예측은 예측으로만 끝나고...
한 해 동안 요동을 쳤던 주요 환율과 뉴욕증시 및 국내증시의 주가지수 변동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한다.
항목 00년말 01년말 변동율
USD/JPY 114.4 131.1 엔화 14.6%절하
EUR/USD 0.942 0.8855 유로화 6%절하
EUR/JPY 107.8 116.1 엔화 7.7%절하
USD/KRW 1264.5 1323 원화 4.6%절하
DowJones 10750 10137 5.7%하락
NASDAQ 2470 1967 20.4%하락
KOSPI 504.62 693.7 37.5%상승
KOSDAQ 52.58 72.21 37.3%상승
위에 정리된 항목들을 일견하고 나서 느끼는 소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경기침체와 바닥을 모르는 상태에서 추락하고 있는 일본경제의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한국은 상대적으로 견실한 성장률과 주가상승률을 기록하였다. (한국이 외국인투자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 대상국임을 증명하고 있으며, 일본과는 반대로 국가신용등급이 상향조정 되었다는 사실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일본과 한국이 처한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환율에 반영되고 있다. 1년 동안 달러화 대비 14.6%의 절하율을 보이고 있는 엔화에 비해 원화의 달러 대비 절하율은 4.6% 정도에 불과하다. 그 결과 연초 100엔당 1105원 수준까지 치솟았던 엔/원 환율이 1009원까지 급락하여 원화는 엔화대비 8.7% 정도 절상되었다.
셋째, 원화환율과 엔화환율간의 연계성이 다소 느슨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달러/엔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의 주요변수이다. 엔화와 원화가 따로 제 각각의 길을 가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 준 기간은 지난 11월 15일부터 11월 27일까지의 기간이었는데 그 때는 서울 주식시장에 연일 1~2천억원에 해당하는 외국인 주식매수자금이 쏟아져 들어 올 때였다. 그러나 연말을 맞아 외국인들의 주식매수세가 주춤하는 기간에 달러/엔이 심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중요한 레벨이었던 130엔 돌파가 이루어지면서 서울의 환율도 마냥 수급요인만 따지고 있을 수는 없었고, 한 번 추세가 서는 장이 되어 버리자 동경에서도 서울에서도 달러 매도세는 자취를 감추고 매수세만 부각되면서 또 한 번 시장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넷째, 국제금융시장에서도 법보다는 주먹이 앞선다는 사실이다. 10년 장기호황 끝에 찾아온 경기침체 기간에도, 증시가 맥을 못 추고 자기네들 안방에 테러리스트들이 몰고 온 비행기가 추락을 해도, 미 달러화는 주요통화 대비 강세를 이끌어 내었다. 정말 달러는 대단한 놈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은 자기네 형편이 여의치 않다고 아예 "엔화가치 급락유도"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생떼를 쓰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무성 관료들을 비롯한 영향력있는 인사들이 엔화절하를 부추기는 발언과 정책발표를 쏟아 내놓고서도 자기들은 인위적으로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한 적이 없으며 시장이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해 적정환율로 가고있다고 우기고 있다. 조선 말 한반도를 삼키기 위해 이 땅에서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한 판 싸움도 불사했던 일본, 진주만을 기습하고 미국 본토까지도 넘봤던 일본... 정말 만만치 않은 국가요 종족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연초에, 그리고 연중에 필자를 포함하여 여기저기서 연말 환율이 어떻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써 냈던 글들을 한 번 훓어 보니
역시 예측은 예측(forecasting)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시장이란 곳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예측대로만 움직여 준다면 시장에 몸 담고 거래하는 이들 중에 돈 잃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 그 예측 따라 매수나 매도로 시장참여자들이 몰려 다닐 때 그 결과로 나타나는 환율이나 주가 따위는 전혀 예측과는 엉뚱한 방향에서 헤맬 수 밖에 없다.
당장 12월 31일 오전 장에서 나타나는 환율만 해도 그렇다. 1323원으로 지난 금요일 종가가 형성되었지만 1322원으로 개장하여 곧 1320원이 무너지고, 1318.50원에서 한 차례 매매공방이 펼쳐졌지만 1315원대까지 환율이 밀려나면서 10:1의 엔/원 환율 붕괴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불과 며칠 전 1330원 언저리에서 1350원이나 그 이상의 환율을 기대하면서 달러매수에 나선 세력들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아직 손절매를 하지 않은 상태라면 달러/엔의 급등세 재개만 기다리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겠는가? 저 아래에서부터 달러 롱포지션을 구축하였다가 1320원대 후반에서부터는 차익실현에 나서고 거기에다 숏으로까지 돌아선 세력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연말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라고 쾌재를 부르겠지만, 그들의 "장 만들기"에 휘둘린 측이라면 씁쓸하게 연말을 보낼 수 밖에 없다. 버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도 있기 마련... 그나마 잃지 않는 쪽에 서 보고자 우리는 내일에 대한 하나마나 한 예측(?)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135엔과 1350원
새해 환율예측에 크게 작용하는 요인들은 세가지로 압축된다. 달러/엔 변수, 미국의 경기회복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국내외 증시의 회복세 여부, 그리고 월드컵과 대선(大選)이라는 정치·경제적 변수이다.
첫째, 달러/엔과 관련해서 시장에서 주목하는 레벨은 135엔과 1350원이다. 히라누마 다케오 일본 경제산업상은 최근 "엔화가치 하락세의 한계는 135엔 정도"라고 발언하였는데 이는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달러/엔은 130엔이 상향돌파 되면서 기술적으로는(technically) 위가 열려 있는 상태다.(147엔의 고점과 101.40의 저점을 61.8% 되돌리는 수준이 130엔이었고 이 레벨은 또 Weekly chart로 살펴 보았을 때 역 헤드 앤드 쇼울더(Reverse Head & shoulder) 패턴의 네크라인(Neck-line)이 지나는 레벨이기도 하였음은 이미 밝혔다). 일부에서 얘기하는 바와 같이 140엔이나 150엔대를 못 갈 이유도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2000년 벽두부터 101.40 레벨에서부터 치솟기 시작한 달러/엔의 파동을 다시 한 번 세면서 히라누마 장관이 언급한 135엔이 정말 의미있는 레벨이 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차피 나중에 가 봐야 밝혀질 사안이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려보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135엔이 워낙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레벨이라 보긴 봐야 할 텐데 새해 들어 바로 보자고 덤빌 것인지 132엔 언저리에서 약간의 하락조정을 보인 뒤에 갈 것인지가 불투명하다. 어느 경우이든지 135엔을 건드리고 나면 달러/엔은 크게 보아 101.40에서부터 135엔까지 달려 온 상승세에 대한 조정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차트로 확인하실 분들을 위해서 부연하자면, Weekly chart로 살펴보았을 때 135엔은 상승 5파의 꼭대기로 작용하면서 그 때부터는 140엔대나 150엔대로 진입하기에 앞서 오랜 기간에 걸친 하락 조정장세를 거칠 수가 있다는 얘기다. (혼자 소설을 쓰는 듯한 감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가 보지 못한 길을 앞에 두고 잔머리를 굴리는 상황에서 이러한 작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둘째, 국내외 증시는 새해 들어 상승세를 이어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선 서울의 종합주가지수는 뉴욕의 다우존스지수나 나스닥 지수와 마찬가지로 Monthly chart에서 적삼병(赤三兵)이 출현하였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에 걸쳐 상승세를 지속하는 양봉(陽棒)이 이어졌음을 의미하는데, 단기 급등에 따른 기간조정 혹은 하락조정을 거칠 수는 있으나 과거 이러한 적삼병 출현은 대세상승의 초입에 자주 나타나는 패턴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년 마지막 경제지표라 할 수 있는 미국의 12월 소비자신뢰지수(컨퍼런스 보드 발표)가 전달의 84.9보다 크게 상승한 93.7로 나타난 사실과 나스닥의 경우 지수 2000, 다우존스의 경우 지수 1만 근처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가운데에 악재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는 장세가 미국 경기의 조기회복과 증시활황을 기대해 보게끔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4분기 소비자동향지수(CSI)가 전분기 85에서 94로 상승한 점이나 연말을 앞두고 종합지수 700 회복에 집착을 보인 점 등이 다가오는 2002년도에는 주식투자자들의 웃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셋째, 2002년은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임에 유의해야 한다. 87년 12월 28일(13대 대선), 88년 9월 17일(88 올림픽), 92년 12월 18일(14대 대선), 97년 12월 18일(15대 대선) 이후에는 항상 국내 주가가 급등세를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환율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변수들에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못했고 또 96년 말 이후에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였었기에 뭐라 단정짓기 어렵지만, 갈수록 환율과 증시동향 간의 연계성이 높아지는 시기이기에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어쨌든 월드컵 대회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치른다면 바깥에서 서울로 돈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들어왔다가 언제 다시 나갈지 모르는 투기자금들과는 성격이 다른 돈들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 와 쓰고 가는 돈은 우리가 버는 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추 새해 환율의 윤곽은 잡힌다.
연초에는 역시 달러/엔을 당해 낼 변수가 없을 것이다. 조정다운 조정 없이 바로 135엔을 향해 치솟을 것인지, 132엔을 앞두고 잠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 조정장세가 다소 그 폭을 확대할 것이지, 135엔에 이르면 정말 달러/엔의 상승세가 한 풀 꺾이며 깊은 조정을 거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모두가 불투명하다. 이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급격한 엔화약세에 대해 불편한 중국의 심기를 대변하였고 우리나라의 경제관료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의 노골적인 엔화약세 유도는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님을 천명하며 견제에 나서고 있다. 정작 그 영향력이 제일 큰 미국의 입장표명이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그들의 내심이 무엇인지 애매하지만, 일단 연초에는 달러/엔의 135엔 공략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거래에 임해야 할 것이다. 엔화가 기어이 가야겠다면 우리 환율도 1350원까지는 열려 있다는 자세로 말이다.
그러나 달러/엔의 상승세를 능가하는 달러/원 환율의 급등세를 뒤쫓아 가거나 선도하는 거래는 상당히 위험하다. 언제든지 뒤돌아 설 수 있는 놈을 추격하면서 아예 앞질러 달려가고자 하다가는 다칠 수가 있다는 얘기다. 달러/엔이 조정세를 보이면 우리 달러/원 환율은 더 급격한 조정장세를 펼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작금의 엔화가치 급락이 과연 일본이 기대하는 과실을 그들에게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태에서(그들의 통화만이 절하되어야 뭘 노려도 노릴 터인데, 대만, 중국, 한국 등이 예전처럼 고스란히 앉아서 당하지 만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형국에서 과연 엔화의 바닥없는 추락이 무슨 과실을 거둘 것인가?) 필자는 요즘 국내외 외환시장에서 목격되는 관제환율(管制換率)을 보면서 헤밍웨이의 소설을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감동적으로 스크린에 재현하였던 영화제목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