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무언가를 멀리 쏘아 보내는 동작은 역설적이게도 궁사 자신에게 돌아와 자아를 마주하게 한다.” (‘아처’ 103쪽)
베스트셀러 소설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브라질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신작 ‘아처’(문학동네)를 펴냈다. 그가 이번에 이야기 소재로 꺼낸 것은 활쏘기, 바로 궁술이다. 그가 최근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에게 트위터로 “축하한다”는 글을 남긴 것은 활쏘기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 때문이다.
| 파울로 코엘료(사진=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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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설적인 명궁과 그에게 도전해온 이방인의 대결, 그리고 이를 지켜본 소년이 명궁으로부터 활쏘기의 기본기를 전수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48쪽 분량으로 한번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한국어판은 책 ‘엄마 마중’ ‘책과 노니는 집’ 등의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김동성의 그림 스물두 점을 함께 실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궁술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방인이 전설적인 명궁 ‘진’을 찾아오면서 벌어진다. 진은 한때의 명성을 뒤로 하고 이름 없는 목수로 살아가고 있다.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는 진과 친한 소년. 진은 이방인을 애써 외면하지만,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는 간곡한 요청에 그의 도전을 받아들인다.
이방인이 쏜 화살은 40미터 거리의 체리 열매를 관통한다. 그러나 진은 낭떠러지 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흔들다리 위에서 20미터 거리에 있는 복숭아를 정확히 맞힌다. 이방인도 진과 똑같이 도전에 나서지만,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보고 얼어붙은 나머지 복숭아를 맞히는데 실패한다. “활쏘기 기술에 능통하고 활을 다룰 줄도 알지만 정신을 다스리는 법은 익히지 못했다.” 진이 이방인에게 전하는 가르침 속에는 성공과 실력만 중시하는 나머지 마음은 소홀히 대하는 현대인을 향한 일침이 있다.
코엘료의 소설은 신비주의 속 사색의 순간을 선사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 이면에는 코엘료의 경험이 있다. 코엘료가 산티아고 순례 여행 이후 ‘연금술사’를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코엘료가 ‘아처’를 쓰게 된 것도 활을 쏘는 무술, 궁도(弓道)를 오랫동안 수련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출판사를 통한 인터뷰에서 “‘아처’는 궁도를 배우며 익힌 내 경험을 세분화해 상술한 글”이라고 밝혔다.
진과 이방인의 대결을 그린 프롤로그, 진의 과거를 담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소설의 나머지 부분은 활쏘기의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동료, 활, 화살, 표적, 자세 등 활쏘기의 기본적인 요소는 물론, 화살을 잡는 법, 활을 잡는 법, 표적을 보는 법 등을 찬찬히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활과 화살과 표적이 없는 궁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활쏘기를 설명하는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들이 김동성 화가의 그림과 함께 우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그 속엔 코엘료가 전하는 인생철학이 깊이 배어 있다. “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활이 네 팔의 일부이자 사유의 연장이 되어야 한다” “화살이 표적일 빗나가더라도 다음번에 더 잘 조준할 수 있는 법을 배울 것이다” “궁사가 존재해야 표적도 존재한다” 등의 문장이 그렇다. 활을 쏘는 것처럼 삶 또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코엘료는 “사실 인생은 단순하지만, 우리가 아주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 주변의 단순한 것들에 주목하며 인생의 본질을 배운다”며 “바로 이 생각으로 ‘아처’를 쓰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삶에 지쳤을 때, 책장을 펴게 만드는 변함없는 코엘료식 우화의 힘을 ‘아처’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