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오즈의 마법사, 유쾌한 비틀기

심사위원 리뷰-뮤지컬 '위키드'
원작에 대한 의심에서 이야기 재구성
그랬을 법한 설정· 치밀한 전개에 경탄
'중력을 넘어서' 부를 땐 박수갈채 절로
  • 등록 2021-04-15 오전 6:00:00

    수정 2021-04-16 오후 6:19:38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원 소스 멀티 유즈(OSMU)가 화두다. 특정 장르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익숙하지만 다시 새로운 체험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단순히 예전의 물건을 재활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형식이나 장르가 바뀌는 것은 기본적인 출발점에 불과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의 전환과 양식의 타파, 뒤통수라도 얻어맞는 듯한 묘미가 더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원 소스는 기본 소재에 불과하며, 오히려 기막힌 멀티 유즈의 상상력에 감탄을 내뱉게 된다.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사진=에스앤코)
최근 앙코르 무대가 꾸며진 뮤지컬 ‘위키드’가 전형적인 사례다. 이 작품이 비튼 원작은 바로 ‘오즈의 마법사’다. 프랭크 바움이 쓴 소설로 대중들에겐 볼수록 귀엽다는 뮤지컬 여배우 주디 갈란드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러 깊게 각인된 바로 그 추억의 콘텐츠다.

캔자스시티에서 회오리바람에 실려 오즈로 날아온 도로시가 못된 서쪽의 초록마녀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 용기가 없는 사자, 심장이 없는 양철인간은 이 과정에서 각각 지혜를 상징하는 졸업장, 용기를 상징하는 훈장, 심장박동과 유사한 시계를 받게 되고, 도로시 역시 마법의 구두 뒤꿈치를 세 번 두드리며 마법이 담긴 표현인 “이 세상에 집만한 곳은 없다네(There’s no place like home)”를 외치고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는 판타지가 펼쳐진다.

‘위키드’는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인 의심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과연 허수아비와 사자, 양철인간은 어디서 온 존재들이며 회오리바람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초록 마녀에겐 무슨 출생의 비밀이 있으며, 온갖 마법을 부리다가 고작 한 양동이의 물로 녹아내린 마녀의 감춰진 진짜 사연은 무엇인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영미권 공연장 객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이유는 치밀한 극 전개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거의 모든 소재와 이야기들이 사실은 이런 사연과 배경 탓이라는 설정이 감탄을 자아낸다. 당연히 이 작품을 만끽하고 싶다면 그래서 꼭 선행돼야 할 숙제가 있다. ‘오즈의 마법사’를 먼저 꼼꼼히 보고 공연을 찾아야 한다.

이야기를 비튼 재미는 원작을 잘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웃음이 나오거나 놀라움을 느낀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보다 영화로 만들어진 ‘오즈의 마법사’를 추천한다. 뮤지컬 ‘위키드’도 ‘오즈의 마법사’의 외전 같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동명 소설에서 비롯됐지만, 사실 무대가 꼼꼼히 설명하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법을 활용한 순간이동으로 고향집 옷장에서 나오는 초록마녀 엘파바가 “역시 이 세상에 집만한 곳이 없구나”라고 말할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최고의 관극이 될 것이다.

옥주현과 정선아의 무대는 말 그대로 절정의 인기다. 티켓을 구했다면 꽤 부지런한 마니아라 인정할 만하다. 더블 캐스트로 등장하는 손승연 엘파바와 나하나 글린다의 무대도 무척 만족스럽다. 1막 마지막에 소름돋는 가창력이 필요한 ‘중력을 넘어서’(Defying Grvity)에선 극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명불허전’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사진=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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