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한국 맥주의 '소맥 딜레마'

  • 등록 2019-02-27 오전 5:30:00

    수정 2019-02-27 오전 5:30:0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한국 맥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다양한 맛의 외국 맥주에 비해 ‘맛이 없다’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우리나라 맥주가 호평을 받을 때가 있다. 소주를 섞을 때다. 밍밍했던 맛에 감칠맛이 더해진다.

유명 유튜버인 ‘영국남자’도 맥주에 소주를 섞어 시음하는 장면으로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맥주에 소주를 섞은 ‘소맥’ 맛을 본 영국 출연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소맥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소맥의 혜택을 톡톡히 본 맥주 브랜드가 ‘카스’다. 수치적으로 드러난 통계는 없지만, 소주에 맥주를 탄다면 습관적으로 카스를 찾는다. 주류 업계에서도 한국의 소맥 문화에서 카스가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고 한다. 이는 카스가 2010년 이후 ‘하이트’를 제치는 데 큰 힘이 됐다.

다만 맥주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런 인식이 달갑지만은 않다. 제품이 많이 팔려 좋긴 하지만, 자기네 제품이 ‘맛없다’라고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국 맥주는 소주를 타야 맛이 있다’라는 편견이다.

맥주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편견이 불편하다. 한국 술 문화와 매출을 생각하면 소맥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소맥 딜레마다.

이런 소맥 딜레마가 잘 드러난 사례가 롯데주류의 ‘피츠’와 ‘클라우드’다. 두 맥주 모두 맥주 맛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 후발주자인 롯데주류는 맛있는 맥주를 표방했다.

클라우드는 ‘물 타지 않았다’라는 콘셉트로 맥주 본연의 맛을 살렸다며 마케팅 했다. 수입맥주와도 맛으로 경쟁할 수 있다고 여겼다. 초기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이런 클라우드에도 소맥은 높은 벽이었다. 맥주 맛 자체로는 괜찮았으나, 소맥용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다.

피츠는 초기부터 카스·하이트와 대결 구도를 이뤘다. 새로운 소맥용 맥주로 기대를 모았던 것도 사실이다. 초반 반응은 괜찮았다. 하지만 최근 피츠도 상당수 음식점에서 자취를 감췄다. 업계에서는 소맥 마케팅에 회사가 힘을 보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소맥용 맥주’라는 키워드에 롯데 측이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1990년대 천연암반수 콘셉트로 OB맥주를 추월했던 하이트(당시 조선맥주)도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소맥 딜레마에 빠져 있다. ‘맥주 본연의 맛을 살리는가’, ‘소맥 시장에서 카스와 다시 한 번 대결을 펼치는가’이다.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나름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싶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하이트 외 소맥용 맥주 제품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면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제품이 나오게 된다.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소맥 문화 기저에는 ‘한국 맥주는 맛없다’라는 편견이 있다. 이 편견을 맥주 제조사 스스로가 강화시켜왔다. 이번에는 좀 다를까. 올해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는 맥주 제조사들이 이번엔 소맥 딜레마를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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