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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중학교 1학년 강모(14·여)양은 얼마 전 도덕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논쟁을 벌였다. 선생님이 여학생들만 콕 짚어 집안일을 도와줘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강양은 “여학생들에게만 집안일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엄연한 성차별”이라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 혜화역 시위에도 참가했는데 학교에서는 양성평등과 여성인권 관련 교육이 부족해 불만”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관심 갖는 초·중등생 늘어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열풍 등의 영향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초·중등생이 늘어나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학생들은 여성 인권 관련 시위에 직접 참여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드는 등 활발한 페미니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여전히 페미니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양성평등 등 관련 교육이 미진하게 이뤄지고 있어 학생들의 불만이 높다. 전문가들은 페미니즘 관련 교육 정규화 등을 통해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접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에 사는 중학교 3학년 조모(16·여)양은 올해 초 교내에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었다. 조양은 중학교 1학년 때 한 유명 아이돌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겨 동아리까지 만들었다. 현재 동아리 회원은 총 13명이다.
페미니즘은 초등학교 담도 넘었다.
경기도에 사는 초등학생 6학년 한모(13·여)양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혜화역 시위)’에 참여했다. 한양은 “이대로라면 내가 커서도 ‘82년생 김지영’처럼 여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살게될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관련 행사에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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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에서 정기적·체계적 페미니즘 교육 해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은 늘어나지만 정작 학생들은 학교에서 페미니즘 관련 교육을 들을 기회가 없다.
남양주에 사는 초등학생 김모(13·여)양은 “학교 내에서 페미니즘이나 양성평등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며 “초등학생이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 성폭행·성추행 대처법에 대해서 배우거나 여성관련 이슈를 소개해 주고 모두 함께 토론하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교사들도 페미니즘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주모(44·여)씨는 “페미니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게 느껴지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페미니즘을 남녀대결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며 “차별을 하면 안되는 이유 등 페미니즘 관련 교육을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의무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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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렬 폭력예방통합교육연구소 소장은 “초·중·고교에서는 페미니즘 관련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아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여성과 남성이 함께 동등하게 서로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페미니즘 교육이 정기·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도 “지난 2월 국민청원 게시판에 ‘학교현장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권장’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와 정부는 실태조사와 향후 계획 수립을 약속했다”며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기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교육과정에 페미니즘 교육을 담는 게 어렵다면 4대 폭력 예방 캠페인처럼 양성평등 캠페인을 벌이거나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는 방식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