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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달여를 맞은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을 최근 부산 남구 문현동에 있는 부산은행 본사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조직문화 얘기부터 꺼냈다. BNK금융그룹의 자산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섰지만 강한 순혈주의나 지연·학연을 기반으로 한 폐쇄적 조직문화는 병폐로 꼽혀왔다.
학력기재 바꾸고 징계 지워주니 사기가 올라가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김 회장은 내정자 시절 두 가지를 제의했다. 하나는 학력 문제다. 인사기록부에는 들어올 때의 학력이 아닌 최종 학력을 기재하고, 인사 관련 결재 올릴 때 출신학교를 절대 넣지 말자는 것이다. 은행은 들어올 때의 학력이 끝까지 따라가는데 은행을 다니면서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 등을 나왔다면 최종 학력을 대졸로 바꾸도록 했다.
인사할 때 출신학교 기재를 없앤 것은 철저히 능력 위주로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와 한 다리 걸치면 아는 사람이 수두룩한 자신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상황이 아닌 일을 하다가 실수해서 받은 징계는 인사기록에서 지우자는 제안이다. 금융당국에서 제재가 끝났다면 CEO 재량으로 기록을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금융업무라는 것이 보수적으로 하면 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작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기 어렵고, 적극적으로 새 영역을 개척하다 보면 리스크가 따르고 실수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 두 가지를 실행하니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갔다”며 “어지간한 파벌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람이 자산’…건강관리 해주는 회장
운동 마니아 김 회장은 직원들의 건강 전도사다. 백해무익한 흡연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금연 캠페인을 벌인다.BNK에서 출세하려면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또 건강펀드를 만들어 자기관리할 수 있는 당근을 제시했다. 스마트폰 만보기 어플을 깔면 자동으로 회사에 걸음수가 전송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누구나 등록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포상하는 식이다. 건강펀드를 도입하니 지점이나 사무실이 높은 층에 있으면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고, 지점이 1층에 있으면 버스 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는 등 직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등산 바람도 불러일으켰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정산에서 출발해 백양산까지 종주하는 ‘금백종주’를 했다. 총 28km로 산악인이 나서도 꼬박 10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김 회장이 이끈 1진부터 체력상태에 따라 2진, 3진까지 나눠 등반했다.
김 회장은 “부산·경남의 우수한 인재들이 다 서울로 간다”며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에서는 해외 유학보내준다 하면 굉장한 센세이션이 일어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왕 할 거라면 화끈하게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BNK금융지주는 실제 전 계열사에서 연간 30명 정도 유학을 보낼 계획이다. 합격만 하면 학비를 전액 회사에서 지원한다. 김 회장은 1~2년 안에 유학 수혜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 각각 운영하던 연수원을 통합하고 교수진도 더 충원할 계획이다. 은행에서 30~40년 근무했던 지점장들이나 최근에 퇴임한 임원들을 교수로 초빙해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전수받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보이지 않는 자산을 증대하라는 것이 항상 얘기하는 나의 경영철학”이라며 “대차대조표에는 보이지 않는 자산, 그것이 바로 직원의 실력향상과 건강”이라고 강조했다.
일자리·금융약자 배려…사회공헌도 자산
김 회장이 보기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또 있다. 바로 사회공헌이다. BNK금융이 동남권에 기반을 둔 핵심 금융사기 때문에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이나 점포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회장은 “명퇴를 실시하면 지역 경제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오히려 소액점포를 만들고 다 같이 살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은행은 디지털기기에 약한 어르신 고객이 많아 점포를 유지하는 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고객과의 접점인 콜센터 직원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고객관리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100년 갈 BNK그룹 만드는 형님
2개월여를 함께 한 BNK금융 직원들은 김 회장을 형님 같다고 평가한다. 점포를 돌면서 아침을 함께 먹고 차를 마시면서 고충을 들었다. 직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BNK금융그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이다.
김 회장은 “빌게이츠가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은 시간이 있다”며 “지방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을 보면 한 5년 여유가 있으니 그 안에 디지털로 많이 바꿔야 한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지속가능한 BNK금융그룹을 만들기 위해 백년대계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100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의 인간미도 형님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요인이다. 3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의 접견실엔 1대, 2대 회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임 회장이 받은 상패와 사진도 고스란히 진열돼 있었다.
김 회장은 “취임 후 이장호, 성세환 전임 회장을 만났다”며 “자산 10조, 20조 하던 회사를 100조 넘게 키워놓은 건 굉장히 힘든 일인데 고마운 뜻에서 인사드리고 협조도 요청했다“고 말했다. 보통 CEO들이 취임한 후 빅배스(Big Bath·경영진 교체 전 부실자산을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하는 회계기법) 등을 통해 자신의 경영기반을 다지고 전임 회장의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회장 취임 당시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했던 노조도 이같은 김 회장의 진솔한 모습에 투쟁을 접고 회사의 발전을 함께 고민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노조도 한 식구인데 진정성을 갖고 다가서니 마음을 열더라”고 말했다.
대담 = 송길호 금융부장
정리 = 권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