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 청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프로 경찰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24시간을 27~28시간 처럼 쓰며 업무에 전념했다”고 밝혔다. 이 전 청장은 군대와 함께 가장 남성적인 조직으로 꼽히는 경찰에서 ‘여성’·‘순경’·‘고졸’ 세 가지 콤플렉스를 모두 갖고서도 여경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치안감, 치안정감(경찰 내 서열 2위 계급)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확고한 목표 의식 하의 뛰어난 열정이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다. 이 전 청장은 “경위로 시작하는 경찰대 출신과 간부후보생, 경정으로 시작하는 고시 출신들과 비교하면 100미터 달리기에서 30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처럼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하루도 쉼 없이 최선을 다했다”며 “바닥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실무 능력과 감각이 쌓임으로써 자연스레 내공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짧은 가방끈”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쉬고 잘 때조차 끊임없이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30대 중반 한국방송통신대를 입학한 이후엔 늘 강의 내용이 담긴 녹음기를 달고 살았다. 그는 “옷·가방·구두·화장품 등에 돈을 쓰는 대신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수입의 5~10%는 꼭 책을 샀다”며 “양치하는 3분의 시간도 아까워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듣는 등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하루를 27~28시간으로 만들어 활용했다”고 회고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혹 있을까봐 폭탄주 10잔씩 마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강의 내용을 녹음기로 하다 듣다 보니 5대가 내리 고장나기도 했다. 결국 지방간과 이명증으로 고생했지만 순경에서 경정까지 5계급 승진 시험을 단 한 번의 탈락도 없이 통과하는 성과를 얻었다.
|
그는 딸 셋을 가진 엄마로서 자식 모두를 사회에서 인정 받는 인재로 키워내며 일과 가정의 양립에 있어서도 완벽을 기했다. 그는 “남편이 유통회사에 다녀 일요일에 출근했고 저는 주말에도 일에 매달리며 자주 사무실에 나갔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일요 과부, 월요 홀아비’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주말엔 아이들을 사무실에 데려가 같이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심어줬다”고 언급했다.
이 전 청장은 큰딸의 사춘기 때 갈등이 심해져 교육을 위해 경찰 생활을 진지하게 그만둘 생각까지도 했다. 그는 “아차 싶어 밤에 일이 끝나면 학원 앞에 차를 대고 잠을 자면서 매일 기다리는 등 진심을 보인 끝에 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함께 있지 않아도 마음이 함께 하면 같이 있는 것’이라는 말 등으로 딸에게 계속 관심을 보여주고 격려를 보내며 딸을 다독였다”며 “아무리 어려워도 어딘가에 해결책은 있기 마련이니 자신의 환경에 맞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금형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은 여경 최초 치안정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77년 고졸 출신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여경 역사상 세 번째 총경이 됐고 두 번째 경무관이 됐다. 이후 여경으로서 치안감, 치안정감까지 오른 기록은 그녀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재직 시절 불모지나 다름 없던 여성·청소년 분야를 경찰의 주요 업무 영역으로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마포경찰서장 때 연쇄성폭행범 ‘마포 발바리’ 검거, 광주지방경찰청장 시절 ‘도가니’ 사건을 해결해 주목 받았다. 지난 2014년 12월 부산지방경철청장을 끝으로 37년간 몸담았던 경찰을 떠나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