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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정책당국 인사들은 속된 말로 요즘 ‘죽을 맛’이다. 경제정책 약발이 먹히려면 전망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지난 10월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8%로 내다봤다. 그런데 이 전망에는 예기치 못했던 최순실 게이트, 트럼프 당선 등이 반영돼있지 않다. 한 고위인사는 “국내 정치 일정이 나와야 어떻게든 계량이 가능하고 내년 경제전망을 수정할텐데, 그렇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인사는 “트럼프가 어느 정도의 보호무역을 할 지도 예측이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 요인들이 대부분 ‘하방 리스크’라는 점이다. 기존 예상보다 경제성장률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의미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3.0%로 보는 정부도 내부 사정은 약간 다르다. 기획재정부 사람들도 2%대로 예측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정부의 3.0% 성장률은 ‘전망치’보다 ‘목표치’ 성격이 크다.
한국금융학회장 출신의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내수도 수출도 문제이고, 가계도 기업도 문제이고, 현재도 미래도 문제이다”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요인들이 부정적으로 작용해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국 혼란의 후폭풍이 국가대표 대기업집단에까지 미치는 점도 악재 중 악재로 꼽힌다. 그야말로 ‘퍼펙트스톰’이다.
①최순실 정국에 트럼프 당선까지
다만 ‘정치 과잉의 시대’가 경제정책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악재다. 굵직한 정책은 국회를 통해야 시행할 수 있는데, 여야가 ‘정치 싸움’에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는 탓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대선 때는 국정감사도 제대로 안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번의 대선 연도의 경제성장률은 대선 직전 연도보다 평균 0.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 경제 관련 국책연구원장은 “(거국내각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여야의 무게추가 팽팽한 만큼 정치는 논쟁을 하더라도 경제만큼은 중립적으로 다뤄야 한다”면서 “지금 구조개혁의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새 정부 출범까지 과도기동안 경제 컨트롤타워 기능을 할 수 있는 정부주체를 확립해 민간의 심리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②‘보호무역’ ‘각자도생’ 시대 오나
예상치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도 ‘정치 리스크’로 꼽힌다. 그 중 특히 주목되는 게 보호무역이다. 각 경제연구기관들도 트럼프발(發) 고립주의를 주시하고 있다. 내년은 특히 유럽 주요 국가들의 선거도 주목된다. 프랑스 총·대선, 독일 총선, 네덜란드 총선 등이다. 유럽 역시 미국과 비슷한 분위기가 엿보이고 있다.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FN) 대표의 대선 당선 여부는 트럼프 이상의 관심사다. 이는 ‘각자도생’의 본격화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럽연합의 해체까지 거론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는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게 비교적 명확하다. 씨티그룹은 고립주의가 부상하면 세계 경제성장률이 단기간 내 0.2~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노무라증권도 고립주의 영향까지 고려해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을 1.5%까지 낮춰잡았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호무역은 세계 교역에 부정적이고, 우리나라에도 실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③유일한 성장동력 부동산도 우려
당장 부동산 경착륙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직전 주에 비해 0.02%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떨어진 건 2014년 12월12일(-0.01%) 이후 2년 만에 처음이다. 범정부 차원의 가계부채·부동산 대책에 사실상 오름세가 꺾인 것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을 위협하는 건 ‘금리 쇼크’다. 트럼프 당선 이후 이미 국내 채권금리는 급등했고, 주택담보대출금리도 따라 올랐다. 내년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 낮아질대로 낮아진 국내 채권금리가 또 어떤 식으로 급등할지 예측이 쉽지 않다. 만에 하나 다시 한 번 금리 탠트럼(발작)이 현실화한다면 ‘빚 내서 집 산’ 서민들부터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④인구절벽 가속화, 성장 좀먹는다
인구는 곧 가장 확실한 경제의 기초자료다. 인구만큼 예측이 가능한 경제 요인도 드물다. 내후년인 2018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는 ‘인구절벽’이 시작된다는 건 ‘성장절벽’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건 인구구조 영향이 크다”고 했다. 인구 문제가 난제 중 난제인 것은 그 후폭풍을 뻔히 예측하고도 당장 해결이 불가능한 탓이다.
결혼과 출산을 늦추는 건 이미 굳어진 사회적 트렌드다. 올해 1~9월 누적 출생아 수(31만 7400명)는 지난해 같은 기간(33만 6300명)보다 5.6% 감소했다. 역대 최저치다. 출생아 수의 선행지표 격인 혼인 건수도 올해 최저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부터는 저출산 대책이 있어야 하지만 뾰족한 수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