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 | 이 기사는 08월 17일 07시 40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윤 부회장은 지난 7월부터 하나금융의 글로벌 전략업무를 총괄하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를 앞둔 하나금융이 지난 3월 그를 신임 외환은행장에 내정했지만 인수작업이 지연되면서 행장 취임은 늦어지고 있다.
하나금융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은행 산업은 나라 밖으로 나가야 산다`는 그의 소신은 더 굳건해진 것 같다.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그간 계속 강조돼 온 화두죠. 그러나 구호에 그치기 일쑤였고 알맹이도 허약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해외 진출을 바라봐야 합니다. 국내 금융산업은 포화상태고 밖으로 나가는 것 외엔 성장의 길이 없어요. 하나금융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저도 그 고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규모는 2000조원을 웃돈다. 경제규모(GDP)의 2배를 넘어서려 한다. 실물경제의 성장속도와 경제주체별 상황을 보면 은행 산업은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현금 유보율이 높은 대기업은 은행 돈 쓰기를 멈췄다. 가계와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도 턱밑까지 찼다. 우물안만 맴돌다 보니 은행간 고객 뺏기만 반복될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의 순이자마진(NIM)은 떨어지고 있다. NIM이 줄다보니 충분히 자본을 쌓을 기반도 약해졌다.
“해외진출 절박한 심정으로” “1970년대 국내 기업이 앞다퉈 중동으로 나간 것은 나라 안에 먹고 살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금융산업이 처한 상황이 당시와 똑 같아요. 나라 밖에서 먹을 거리를 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글로벌 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그는 그래도 하나은행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중국 현지법인과 인도네시아 PT뱅크하나 등 주요 거점망의 현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중국과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고 인도네시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주지역 진출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큰 딜(Deal)이나 주요 프로젝트 마다 해외 유명 투자은행(IB)만 찾는 대기업에 대해선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때 은행들이 팔을 걷고 기업들을 살리지 않았나요? 그런데 지금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우리 은행을 이용하나요? 아닙니다. 은행들의 해외시장 확대에 대기업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는데 말이죠.”
윤 부회장은 정통 재무부 관료다. 21회(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 재경부 외화자금과장과 은행제도과장을 거쳐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7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는 기업은행 수장을 맡아 미국발 금융위기로 휘청였던 중소기업 구하기에 앞장섰다.
입장 바뀌면 알게 된다 했던가. 긴 세월 금융정책당국에서 일하다 정책의 수요자가 되어 본 윤 부회장 역시 소회가 적지 않다. “은행에 와 보니 더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감독당국 재직 시절 과연 고객의 입장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한다고 했는데 충분히 했는지, 친절한 공무원이 되려고 했는데 정말로 절실하게 수요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는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수요자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으면 결국은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요. 정책 수요자가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닫힌 조직 vs 열린 조직
관직에 있을 때는 가장 시장친화적인 공무원이라는 평을 얻었던 그다. 기업은행장 시절에는 열린 행장으로 은행 안팎의 신망을 샀다. 비결이 무엇일까. 윤 부회장은 살면서 체득한 철학 하나가 있다고 했다 - `답은 현장에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조직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안다.`
“다만 외부환경 탓에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안할 뿐이죠. (스스로) 말하게 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니 어려운 문제도 절로 풀렸던 것 같아요. 공직에 있을 때도 저는 실무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좋은 안을 택했던 거에요. 기업은행장 시절 때도 마찬가지고. 모든 신사업이 다 우리 직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겁니다. 사실 저는 그들을 말할 수 있도록 한 것 밖엔 없어요.”
윤 부회장은 윗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집을 부리고 개입하려 들면 아래 사람은 받아쓰기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고 조언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듣고 모아진 중지, 대중의 지혜가 집약돼 도출된 결과가 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에 다른 이가 정면으로 반박하면 솔직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이를 즉자적으로 드러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고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직원들이 기가 죽어요.” 닫힌 조직이냐 열린 조직이냐, 닫힌 사람이냐 열린 사람이냐를 가르는 작은 실천이다.
“프랑스의 문호 생텍쥐베리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감을 주지 마라.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먼저 키워 줘라.` 참 와 닿는 말이에요. 강제하기 보다 스스로 움직일 동인을 주는 것, 그런 게 CEO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혼자 일하려 들지 않고 조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리더가 조직을 성공하게 만들어요.” 공직생활 31년, 은행장 3년의 세월이 만들어준 CEO론(論)이다.
그런 그에게도 외환은행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론스타의 주가조작 문제로 인수작업이 지연되면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조직간 앙금의 골도 깊어진 상태다. 당장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 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이지만, 인수 후 윤 부회장이 외환은행 직원에게 어떤 꿈과 동경을 품게 할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