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택시를 탔다. “요즘 경기 어때요?”라고 물은 죄로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20여분간 운전기사 차모(55·서울 송파구)씨로부터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처음엔 존대말로 시작하더니 반말에 욕투성이로 바뀌었다.
“내가 얼마 버는지 알아? (하루) 12시간 일해서 버는 돈이 월 130만원이야. 7~8년 전만 해도 200만원은 벌었지. (회사에 내는) 사납금도 못 채우는 날이 많아. 높은 ×들 내 앞에 있으면 두들겨 팰 거야. 가만 안 둘 거야.”
택시 경기는 서민경제의 풍향계.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내수가 침체되면서 택시 경기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 25일 오후 4시쯤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앞에 택시 200여대가 줄을 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택시 기사 최승민씨는“(공항에 도착한 후) 서너 시간은 기다려야 손님을 받을 수 있다”며“12년 택시를 몰았지만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 |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날 기자는 7대의 택시에 동승했는데, 취재 내내 욕설에 가까운 불평을 들어야 했다.
택시운전 경력 11년째인 조모(43·경기도 안양시)씨는 12시간 일해서 하루 약 12만원을 번다. 이 중 사납금으로 6만원을 내고, LPG비용(1만5000원)과 식사비(5000원)를 쓰고 나면 4만원 정도 손에 쥔다.
7~8년 전에 비해 월 수입이 40% 줄었다는 그는 “앞날이 막막해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오히려 IMF(외환위기) 때가 먹고 살기 좋았다”고 말했다. 침체 경기는 과거 중산층에 속했던 조씨 같은 택시 기사를 빈곤층으로 내몰고 있다.
빈 택시가 늘면서 서울 잠실·삼성동·명동역과 같은 대도시 전철역 주변과 횡단보도 근처엔 택시들이 수십대씩 줄지어선 곳이 급증했다.
◆빈곤층으로 전락한 택시기사들=‘바닥경기’ 지표인 택시경기가 악화된 것은 주 고객층인 중산층의 소득이 감소하는 등 고객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GNI)은 올해 1분기에 마이너스 0.6%의 감소세를 기록했다. 내수경기 침체에 기업 투자가 줄고 고용이 위축되면서 가계 소득이 정체상태에 빠진 것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택시 승객은 2000년 이후 4년 사이 212만명(15.4%·1380만명→1168만명)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에서만 택시 승객이 10.8% 줄었다.
택시 시장(운수수입 기준) 규모도 3년사이 6.4% 감소했다(2001년 말 7조7813억원→2004년 말 7조2845억원).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택기기사들의 월 평균 수입(지난해 8월 기준)은 109만2906원으로 최저생계비를 밑돈다.
반면 직장에서 밀려난 중산층이 택시 기사로 대거 진입하면서 택시 공급은 오히려 늘었다. 택시 면허대수는 작년말 현재 24만5924대로, 2000년(22만9254대)보다 7.2% 늘었다. 여기에 사납금이 오르고 유가까지 뛰면서 택시 기사들 수입은 더 쪼그라들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경기침체로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외식도 줄이고, 덜 놀고 덜 쓰니까 택시도 안 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