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인도의 불교성지 강고트리의 강변에서 동생의 시신을 태웠습니다. ‘왜 젊은 나이에 벌써 한줌 재가 돼야 하나’며 울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 마냥 두렵고 슬퍼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는 동생과 같은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1998년 9월 28일, 인도 북부 히말라야에 있는 탈레이사가르봉(6904m)의 북벽으로 신상만(당시 32), 최승철(〃28), 김형진(〃25) 등 3명의 클라이머가 오르고 있었다. ‘악마의 성벽’으로 불리는 수직빙벽 위를 막 넘어서 정상을 100m 앞둔 지점. 이때 갑자기 구름이 밀려왔다. 1시간쯤 뒤 구름이 걷혔을 때 그들은 없었다. 대원들은 이튿날 1300m 아래로 5500m지점에서 추락한 채 발견됐다. 모두 한 로프에 몸을 묶은 채….
당시 숨진 김형진 대원의 형인 김형일(37)씨가 8일 바로 그 탈레이사가르봉으로 원정을 떠난다. 여섯 살 아래 동생에 비해 늦게 전문등반에 빠져들었으나, 그는 그때까지 동생처럼 격렬한 등반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한때 한국 최고의 거벽등반가로 꼽혔던 동생의 후원자로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의 죽음은 그의 삶을 바꾸었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지 등반에만 열중했다.
“동생이 숨진 탈레이사가르봉이지만, 결코 한(恨)을 갖고 가지는 않습니다. 동생이 그랬듯이 저 역시 벽등반을 추구하는 클라이머일 뿐입니다. 동생은 산이 좋아 산을 올랐고 거기서 숨졌습니다. 그걸로 완결된 것입니다. 제가 본 탈레이사가르는 정말 위엄 있고 아름다운 봉우리였습니다. 저는 다만 동생과 인연이 있는, 동생이 왜 그 벽을 오르려고 그토록 애썼는지를 느껴보고 싶을 뿐입니다.”
▲ 김형일씨가 6일 의정부에 있는 한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98년 동생이 오르다 추락사한 히말라야 원정을 떠난다. 사진 위는 김씨의 목적지인 탈레이사가르봉.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그는 이미 작년에 탈레이사가르 원정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 원정대에는 1998년 숨진 최승철 대원의 부인이면서 여성클라이머인 김점숙(37)씨도 참가했다. 두 사람은 각각 동생과 남편의 뒤를 이어 등반파트너로 맺어지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암벽에 달려있는 낡은 로프와 슬링, 하켄 등 확보물을 보면서 동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등반 과정에서 그는 공격조로 뽑히지 못한 채 6200m에서 하산명령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발휘할 수 없었던 등반에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 자신이 직접 대원 4명의 원정대를 구성했다.
“탈레이사가르봉은 거의 1600m의 직벽을 극복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암벽에서 열흘간 매달려 지내야 할지 모릅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영하 25도의 설악산 눈밭에서 비박(텐트 없이 밤을 새는 것)을 하고, 건조식량만으로 며칠간 견뎌내는 지옥훈련을 했지요.”
그의 동생을 산에서 잃은 뒤 얼마 안 돼 그의 누이까지 암(癌)으로 세상을 떴다. 이제 집안에서 자식은 그뿐이다.
“차마 부모님께 탈레이사가르봉으로 원정간다는 말씀은 드리지 못했어요. 다른 산에 간다고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배냇저고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너를 지켜줄 것’이라며.”
그는 이번에 요행히 탈레이사가르 정상을 밟으면 동생의 사진을 파묻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더 이상 탈레이사가르에 가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제 능력과 한계를 받아들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