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살아가면서 ‘눈치’란 참 중요하다.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슬쩍 엄마에게 영어점수가 대폭 오른 성적표를 보여준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선배가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있을 때 조그마한 초콜릿을 선물한다거나…. 쉽게 말을 꺼내기 힘든 일도 직장 상사의 기분이 어떠냐에 따라 쉽게 혹은 어렵게 해결되기도 한다. 눈치가 있으면 돈을 벌 수는 없어도, 삶이 조금 편리해진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
처음엔 웹툰을 읽는 독자들이 다소 답답할 수 있는 캐릭터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지호의 이런 성격 덕에 사이다 한 캔 마신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웹툰을 읽은 독자들이 섣불리 지호처럼 행동하지는 않길 바란다. 지호는 눈치없음 외에 거의 모든 게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캐릭터니까. 만화는 만화로 보자.
△주인공 윤지호는 처음엔 그저 남들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정도의 아이로 그려지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눈치 없음이 본인에게 심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지호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사회’라는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눈치’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많은 사람이 너무 과도하게 눈치를 보면서 끙끙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것은 결국 개인 혹은 우리가 소속된 사회의 불안과 예민으로 이어지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던 요즘, 이런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내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그리게 된 인물이 센스제로 주인공 윤지호입니다.
사실 이야기의 흐름상 초반엔 윤지호의 ‘눈치’에 집중되도록 의도하여 그렸지만 ‘지호’라는 캐릭터를 지켜보시면서 ‘눈치 없다’라는 하나의 부정적이고 단편적인 모습보다 지호가 가지고 있는 선하고 긍정적인 마음에 좀 더 독자분들의 이목이 끌렸으면 했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인물이 있나요.
1화 에피소드에서 “눈치 없단 소리 많이 듣죠?”라는 말에 해맑게 웃으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말 진짜 많이 들어요!”라고 했던 건 제 지인의 실화입니다. 굉장히 눈치가 없고 해맑은 친구인데, 당시 그 말을 들은 상사분은 황당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친구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저는 왜인지 그 모습조차 웃기고 귀여웠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항상 사람 말을 부정적으로 꼬아 듣지 않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말하더라고요. 눈치를 많이 보는 저와는 다른 그 아이의 성격이 굉장히 좋아 보였었는데…. 그 친구도 지금은 사회에 찌들어서인지 눈치를 아주 많이 보며 살아가고 있더군요.
고단한 현실에 눈치 살피며 움츠러든 많은 이들에게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과 높은 자존감을 가진 긍정적인 지호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센스제로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게 또 하나의 재미인 것 같은데요, 현재 전체 스토리상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기대할 만한 새로운 에피소드나 장치를 준비중이신가요.
△등장인물 중 지호 커플 외에 또 다른 커플 탄생을 기대해도 될지 살짝 귀띔해 주실수 있나요.
역시 아무래도 기대되는 건 지호의 오빠 ‘상현’의 러브 스토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본인을 개구리의 모습으로 수인화한 ‘구리’가 등장하는 생활 웹툰을 하다가 이후에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웹툰 작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만화가가 꿈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만화를 보는 것과 그리는 것 모두 좋아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줄 때조차 일명 ‘만화 편지(친구 디스하는 일상만화)’라는 걸 그려서 주곤 했었지요.
그러다 20대가 되고 나서 웹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네이버에 ‘도전 만화’라는 아마추어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제가 그린 만화를 보고 즐겁게 웃어주던 친구들처럼 누군가 제 만화를 보고 재밌어해 준다면 얼마나 즐거울까란 생각이 들어 취미 삼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저의 데뷔작인 ‘구리의 구리구리’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로 데뷔하는 건 상상도 못 했고 제가 올린 만화를 지인들과 함께 보며 즐겁게 웃던 것으로 만족하며 지냈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쌓이는 회차만큼이나 꽤 많은 사람이 제 만화를 봐주시더라고요. 그때 당시엔 지금도 유명하신 여러 웹툰 작가분들이 데뷔 전 베스트도전(베도) 만화 공간에서 작품을 업로드하고 계셨고, 꽤 많은 분이 베도에 관심이 많았었던 때라 제 만화가 전체 순위에서 꽤 높은 순위에 든다는 걸 알기 시작한 후로 들뜨는 마음이 생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다듬기도 전에 여러 소셜네트워크(SNS)에 제 만화가 떠돌기 시작했고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이 ‘이거 네가 그린 거 아냐?’라며 연락이 왔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웹툰 작가로서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기대는 운이 잘 따라준 덕에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센스제로 주인공도 그렇지만, 생활툰인 구리구리에서 작가님도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자존감이 높은 덕분인가요.
△작가님의 개그감각은 타고난 건가요, 아니면 집안 분위기인가요. 결혼소식을 알린 뒤 많은 팬들이 축하와 함께 배신감(?)을 느꼈는데 반응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부끄럽습니다만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만해보자면 개그 감각은 조금 타고난 게 아닌가…. 하하하하.
일상툰을 그릴 때 많은 독자분이 왜인지 저를 당연하게도 모태솔로에 매일 집에 누워서 먹는 것만 밝히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결혼 소식을 알리면 엄청나게 놀라시겠지? 실실 웃으며 작업했었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어서 변태같이 모니터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축하해주셔서 기쁘기도 했고요.
△전작인 ‘지원이들’이나 ‘모노마니아’에서는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룬 것 같습니다. 다만 여중이나 여고를 나온 여성이라면 주변에서 목격했을 법한 소재이기도 한데요, 학창시절 겪은 일들을 소재로 다루신 건가요. 해당 소재들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이유는요.
저는 하나의 큰 키워드를 주제로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난 하마안될거야-자존감, 지원이들-자격지심, 모노마니아- 집착). 웹툰 작가로서 역량을 넓히고 싶은 욕심은 늘 있었기에 밝고 웃긴 개그 일상툰과는 완전히 다른 조금은 부정적일 수 있는 어두운 주제를 다뤄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늘 여성으로 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여중 여고를 나오다 보니 주변에 남자보단 여자들이 많은 환경이었기에 더 심도 있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여성의 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리작가님의 작품도 해외에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해외에서의 반응은 국내와 차이가 있나요? 어떤 작가로 남고 싶나요.
제가 봤을 땐 국내가 더 반응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센스제로의 ‘지호’의 눈치 없는 캐릭터성이 해외에선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드는데 더 분발하겠습니다. 하하
어떤 작가로 남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작품이 재미가 있었든 아니든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작가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