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새해에는 지긋지긋한 배달 일 좀 그만하고 싶어요. 로또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사는 거죠”
1등 당첨자가 50명 나왔다는 서울 노원구의 한 로또복권 판매점 앞. 도로변 상점 대다수가 손님 없이 한산했지만 유일하게 복권 판매점만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10년 넘게 배달 일을 했다는 50대 송모씨도 그중 한 명이다. 오토바이를 끌고 온 그는 “내년에는 일을 쉬면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어 “지금 하는 일은 3000원 벌기 위해 3~4km를 뛰어야 하고, 길거리 감시 카메라도 많아 딱지라도 끊기는 날엔 마이너스”라며 “요즘엔 몸도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 서울 노원구의 한 로또복권 판매점에서 배달 기사 송모 씨가 자신이 구매한 복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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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데일리가 만난 시민들은 로또를 구입하는 이유로 ‘인생역전’을 꼽았다. 올 한해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를 겪은 시민들은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814만분의 1` 당첨 확률인 로또를 구입하며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거는 실정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건강원을 운영한다는 60대 이모 씨는 “얼마 전 연금복권 1·2등 동시 당첨된 사연을 접했다”며 “내게도 살면서 한번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포기하지 않고 매주 구매한다”고 말했다. 40대 주부인 김모 씨는 “평소 복권을 자주 구매하는 편은 아닌데 요즘 부쩍 마음도 싱숭생숭해져 한번 사봤다”며 “1등에 당첨되면 아파트 대출부터 갚고 나머지는 노후 자금으로 아껴둘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70대 허모 씨는 “불경기일수록 복권이 많이 팔린다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힘든 상황 같다”며 “1등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100만원이라도 되면 손주들 세뱃돈이나 주고 싶다”고 전했다.
복권수탁사업자 동행복권에 따르면 올해 12월 평균 복권 판매액은 1064억 9681만원으로 지난달 1061억 9973만원보다 3억원 가량 늘었다. 여기에 아직 추첨이 이뤄지지 않은 올해 마지막 로또(12월30일)까지 포함하면 연말 판매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마지막 로또(12월31일) 판매액은 1173억 2390만원으로 평균보다 100억원가량 많았다.
| 서울 노원구의 한 타로 카페. (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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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저물며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사주 카페와 타로 점집을 찾는 발길도 부쩍 늘었다. 서울 노원구에서 사주 풀이하는 한 역술가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는 평소보다 매출이 30%가량 늘어난다”며 “금전운부터 직업운, 연애운까지 사람들 고민도 각양각색”이라고 말했다. 평소 사주·타로에 관심이 많다는 30대 초반의 직장인 나모 씨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점술에 빠지는 것 같다”며 “상담을 받으면서 답답함이 풀리고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20대 직장인 이모 씨는 “내 상황에 맞게 미래에 대해 암시를 해주니까 홀가분하다”며 “‘대기만성형’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클수록 비과학적 요소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 교수는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올해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지 생각하게 되는데 결과물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기가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다 보니 사주나 운세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동기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