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갑(59)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시대에 맞는 유교’를 줄곧 강조해왔다. 지난해에는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며 차례상 간소화로 큰 화제를 모았고, 최근에는 제사상까지 간소화 방안을 내놓으며 이목을 끌었다.
위원회가 제시한 ‘전통제례 현대화 권고안’은 파격 그 자체였다. 밥, 국, 술 등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몇 가지 필요한 것만 간소하게 차려도 된다고 권고했다. 특히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이라면 피자나 치킨도 괜찮다는 것이다. 간단한 반상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더 올려 마치 ‘생일상’처럼 차려도 좋다고 했다. 제사의 핵심은 거한 상차림이 아닌 고인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유림회관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제사나 차례 때문에 가족이 모여 싸운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며 “돌아가신 분을 그리워하는 가족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화합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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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원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현 세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위원회가 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는 응답자가 55.9%로 집계됐다. 성인 10명 중 6명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많이 침체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치로 확인하고 나니 ‘이게 진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놀랐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형식에 치우친 제사보다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제사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간소화 방안을 만들었다. 기제(조상의 사망일에 지내는 제사)의 경우 밥·국·술 3종 등을 포함해 간소화했고, 묘제(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는 술과 떡, 간장, 포, 적, 과일을 올리면 된다. 특히 여성들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아 온 제사음식 준비에 관해서도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남성은 제사에 올릴 소, 돼지 등의 가축을 잡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잡아 온 것을 음식으로 만들었어요. 현대사회로 오면서 가축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을 뿐 예부터 남녀가 함께 제사상을 준비했어요. 간편한 제사상 권고안을 만들기 위해 학자들과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옛 문헌에 종가마다 다른 제사 형식이 나와 있어서 가장 훌륭한 유학자였던 퇴계 선생과 윤중 선생 집안의 제사상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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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전통제례’에 대한 국가무형유산과 세계인류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 가정의 제사는 간소화하되 전통 제례의 보존·계승을 위해 종가를 중심으로 지켜온 불천위(나라에 큰 공을 남긴 사람의 신주를 사당에 두면서 제사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 제례는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 위원장은 “우리의 전통 제례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인류가 가지고 있는 조상에 대한 추모 방식의 하나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최 위원장은 평생 유교철학을 연구해 온 학자다. 유교는 옛것에 매몰된 것이 아니며 유학자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율법을 만드는 선구자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허례허식이나 남녀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유교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잘못된 유교 문화가 지금도 많이 퍼져있어요. 갑오경장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돈이 중심이 된거죠. 돈 많은 사람들이 제사상을 거하게 차리면서 제사 문화가 형식에 치우치는 방향으로 가버린 것 같아 안타까워요. 지금은 뉴노멀 시대이고 21세기예요. 과거에만 집착해서는 새로운 시대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는 표준을 찾아야 하고, 국민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율법이어야 보존할 가치가 있죠. 유교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1964년 출생 △성균관 총무처 총무부장 △유도회총본부 기획실장 △유교사상연구소 책임연구원 △유교신문사 주간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성균관 교학처장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