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아니 쓰다. 국민을 이겼다고, 그것도 먹고 살기 힘든 화물차 운전자들을 상대로 이겼다고 좋아할 일인가? 엄밀히 얘기하면 사실 이긴 것도 아니다. 화물연대 파업의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화물연대 파업 사태를 불러온 근원적 책임이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가져온 직접적 발단은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안전운임제다. 하지만 상황을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안전운임제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사업자인 화물차주에게 불리한 화물운송업계 운영구조가 근본 원인이다.
개인사업자 입장인 화물차주는 화주의 운송 관련 정보로부터 소외돼 있다. 관련 정보는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운송주선사에 몰린다. 그래서 개인 화물차주의 운송 수입은 주선료와 지입료 등으로 여기저기 뜯겨 나간다. 최종적으로 화물차주에게 돌아가는 운임 수입은 그러지 않아도 높지 않은 운임에서 더욱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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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가 미봉책이었다 해도 잠시 벌어둔 시간 동안 화물운송업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나름의 의미 있는 대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 누구도 화물운송업계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
안전운임제를 도입한 이전 정부도 문제지만, 올해 6월 안전운임제를 두고 벌어진 화물연대의 1차 파업 경고에도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지금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물연대 파업의 이면에는 부실한 정부 정책과 대응 미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업계와 정부 모두 이번 사태를 화물운송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계기로 삼아야 파업으로 경제 전체가 치른 비용을 일부나마 상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화물운송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플랫폼경제 문제와 맞닿아 있다. 플랫폼경제가 심화할수록 운송주선사의 화물운송 플랫폼 장악력은 더 강해질 테고 운송수수료 결정권이 더 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달플랫폼 등 여타 플랫폼 활용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플랫폼경제는 개인사업자들에게 위기이자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플랫폼의 활용 여하에 따라 이전에는 접근이 어려웠던 새로운 고객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따라서 화물차주들은 플랫폼 경제에서 생존할 수 있는 디지털 활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플랫폼이 화물차주들에게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플랫폼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둘만 하다. 하지만 당장의 문제를 억지로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고치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에는 상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