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범죄는 없다”…결국 잡히는 장기 미제, 남은 사건은?

21년 만에 DNA로 ‘국민은행 권총 살인’ 해결
‘포천 여중생’, ‘천안 토막 살인’ 등 남아
경찰, 미제 사건 278건 수사 중
“미제 사건 누적되면 후순위 밀려…관심 중요”
  • 등록 2022-09-02 오전 6:00:00

    수정 2022-09-02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7553일.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은행 직원 1명을 권총으로 쏘고, 현금 3억원을 가로챈 뒤 도망간 이들의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지난달 27일 대전경찰청은 장기 미제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의 피의자 2명인 이정학(51)과 이승만(52)을 잡았다. 2001년 12월21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들이 20여년 만에 수갑을 찬 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늦게나마 이들을 붙잡은 데엔 발전한 과학 수사 덕이 컸다.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 중 마스크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재의뢰한 결과, 유전정보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발전한 과학 기술은 1ng(나노그램)의 세포에서도 피의자의 유전자 정보를 찾아냈다.

대전경찰청 과학수사계 입구에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문구가 적혀있다.(사진=연합뉴스)
과학 기술 발전, 실마리 …남은 장기 미제 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해결된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이다. 경찰이 들이민 DNA 검출 결과에 이춘재가 범행을 인정하면서 33년 만에 진범이 잡혔다. 지난 2004년 10월 발생한 ‘삼척 노파 살인 사건’도 피해자 오른손 손톱에서 채취해둔 DNA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돼 16년 만에 진범을 밝혀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아직 풀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의 먼지 쌓인 파일들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 2004년 2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배수로에서 온몸이 훼손된 채 발견된 ‘포천 여중생 살인 사건’, 2006년 1월 충남 천안에서 50대로 추정되는 여성의 토막 시신이 발견된 이른바 ‘천안 토막살인 사건’, 2010년 2월 충북 오창의 한 야산 배수구 맨홀에서 40대 남성이 목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된 ‘오창 맨홀 변사체 사건’ 등이다. 살인죄는 2015년 공소시효가 폐지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범인을 잡는다면 처벌할 수 있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개구리 소년’ 사건과 ‘이형호 유괴 사건’ 등도 수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전국 17개 시·도 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이 설치된 이후 총 78명의 수사관이 미제로 남은 주요 강력 사건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준 미제 사건 278건을 수사 중이다.

장기 미제 등록 후에도 ‘천착’…“관심이 중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장기 미제 사건이 곧 해결될 것 같지만,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다.

5년간 수사를 진행한 사건 중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종결한 사건의 경우 경찰은 추가 단서 확보 시까지 미제 사건으로 별도 등록하고, 미제전담팀이 맡는다. 미제전담팀이 사건을 전달받아 5년간 수사를 더 진행했음에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열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지정하고, 일반적인 수사 활동을 중지한다.

그러나 사실상 ‘수사 중지’는 아니라고 경찰은 설명한다. 장기 미제 사건으로 지정돼도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면 재수사를 진행할 수 있어서다. 경찰 관계자는 “미제 사건을 맡은 각 지방청은 증거물 감정 등을 주기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하면서 새로운 단서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장기 미제 사건을 풀 열쇠는 ‘관심’이라고 말한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관련 사건 데이터가 쌓이면서 밝혀질 수 있는 장기 미제 사건이 늘어나겠지만, 이는 수동적인 관점”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누적되다 보니 장기 미제 사건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지게 된다”며 “경찰 지휘부와 전담팀 등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수사를 이어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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