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의 선비이야기]훌륭한 인물 길러낸 퇴계가(家) 어른들

  • 등록 2021-08-13 오전 6:10:00

    수정 2021-08-13 오전 8:25:41

[김병일 도산서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 우리의 교육열은 많은 나라에서 경이롭게 바라볼 만큼 대단히 높다. 그러나 교육열이 이렇게 높은데도 학업 성취도는 도리어 뒷걸음치고,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으며, 일자리는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경이로운 교육열의 결과가 바람직한 인재 양성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교육의 목적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학문을 숭상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그때도 교육열이 높았지만 교육 방법과 내용은 아주 달랐다. 생계에 매달린 부모를 대신하여 조부모의 밥상머리와 사랑방 교육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자신의 몸가치 높이는 지식교육보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성교육이 더 먼저 이루어지며 중시되었다.

높은 학식과 따뜻한 인품으로 오래 존경 받고 있는 퇴계 선생의 어릴 때 교육이 대표적이다. 퇴계는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33살에 홀로 된 어머니는 집안일과 농사일로 안팎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러면서 “과부의 자식이라고 흉을 볼 수 있으니 남보다 백배 노력하여라”, “지식뿐 아니라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늘 자식들을 타일렀다. 퇴계가 보여준 겸손과 공경과 배려 그리고 배움에 대한 성실한 열정 등은 이런 어머니로부터 크게 영향 받은 것이다.

집안의 많은 어른들도 선한 영향을 끼쳤다. 생후 일곱 달 된 막내아들 퇴계를 두고 40세에 숨을 거둔 아버지는 아들의 평생 진로를 정해준 듯하다. 평소 독서와 글 가르치기를 무척 좋아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내 여섯 아들 중에서 공부하고 제자 가르치는 자식이 나오면 여한이 없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머니에게서 이 유지를 자주 들었던 퇴계는 커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학문에 몰두하여 일가를 이루고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조부모의 영향도 컸다. 93세까지 장수한 할머니는 손자인 퇴계와 20년 동안 한집에서 살면서 바깥어른이 없는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손자들에게 무릎교육을 하였다. 무슨 이야기를 주로 했을까?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였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30세에 이웃 고을 봉화 훈도(오늘날 초등학교 교사 신분)로 있었다. 이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는 정변을 일으켰는데, 이를 의롭지 않다 여겨 젊은 나이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서너 시간 소요되는 국망봉 정상에 단을 쌓고 단종을 그리며 영월을 향해 향 피우며 절을 하곤 했다. 이런 대의와 충절의 올곧은 선비정신은 얼굴도 못 본 손자 퇴계가 살아가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된다.

외할머니의 영향도 한 몫 하였다. 외할머니는 집안의 많은 책을 아들들이 읽지 않자 책은 공적인 물건[公物]이니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사위인 퇴계의 아버지에게 물려주었다. 퇴계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스승 없이 대학자가 될 수 있었던 바탕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바쁜 공무 중 짬을 내어 고향에 들른 숙부(송재 이우)도 어린 조카에게 학문에 철저하게 임하는 자세를 심어주었다. 12살 때 ≪논어≫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웠는데도 숙부는 칭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훗날 퇴계는 “내가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은 모두 숙부께서 가르치고 독려하신 덕분이다.”고 회상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 역시 자녀와 손주들이 훌륭하게 되길 원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퇴계의 사례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무엇보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보고 들은 어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우리도 퇴계가의 어른들처럼 늘 올바른 처신과 수범을 보이며 살아가자. 앞서 가는 이가 모범을 보이면 뒤따르는 사람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면 훌륭한 자손들이 나오고, 우리사회도 바른 사람이 넘치는 도덕사회로 나아가고 자신도 추앙을 받게 되리라. “지도자가 바르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공자의 말씀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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