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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1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유류세 개편 가능성을 일축해온 기재부가 이날 유류세 인하를 깜짝 발표했다.
인하 시점·기간·수준은 확정되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오는 22일께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대중·이명박정부 선례, 교통·에너지·환경세법(2조)에 따르면 약 2~10개월간 최대 30% 이하로 인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시행령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절차 등을 고려하면 이르면 31일부터 휘발유·경유·LPG 부탄에 붙는 유류세가 인하될 전망이다.
기재부 “경제 활력 위해 유류세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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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유가 부담은 큰 상황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리터(ℓ)당 15.4원 오른 1674.9원이었다. 휘발유 가격은 올해 6월 넷째 주 이후 15주 연속 올랐다. 이 결과 2014년 12월 둘째 주(1685.7원)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경제학계에선 유류세 인하에 공감하는 상황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유가가 이렇게 계속 오르면 기업 부담이 커지고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 소비를 줄이게 된다”며 “정부는 경기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선제적인 탄력세율 인하 조치를 취하는 등 경기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기재부 “대기오염 상황, 유류세 인하 반대”
그러나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류세 인하가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을 줄이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딱 맞는 정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국무조정실·기재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국내 요인(수도권 기준) 중 경유차가 23%로 1순위 배출원이었다. 지난 달까지도 기재부는 유류세 인하 요구에 대해 “대기오염 감축에 나서는 상황인데 유류세를 낮춰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게 맞는 방향인가”라며 반대해왔다.
특히 기재부가 발표한 2019년 예산안에 따르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계획한 내년 정부 예산은 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1조3000억원보다 4000억원(33.2%) 가량 늘었다. 전기차 보급 관련 예산을 늘리고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는데 쓰이는 예산이다. 유류세 인하로 경유 소비가 늘거나 경유차가 많아질수록 이 같은 미세먼지 감축 예산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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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유류세 인하라는 칼을 뽑은 정부가 약간만 내리는 것도 부담이다. 유가가 확 오르면 실효성 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경유는 지난 6월부터 두자릿수 증가세다. 만약 정부가 10% 이하로 유류세를 인하할 경우 ‘찔끔 인하’ 논란만 불거질 수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을 역임한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미세먼지 감축, 환경세 관련 조세정책 청사진·로드맵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채 돌발적으로 유류세 인하 방침을 밝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기재부가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몰핀 주사와 같은 한시적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히 들여다 봐야할 것”이라며 “전기차 등 에너지 전환으로 유류 수요가 감소한 정유업계를 돕기 위한 한시적 조치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