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백두산은 어느 나라 영토인가

  • 등록 2018-09-28 오전 6:00:00

    수정 2018-09-28 오전 6:00:00

지금의 애국가가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에 기존 가사를 붙여 부르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수립 전까지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에 따라 부르던 노래가 한층 격이 높아진 것이다. 가사는 구한말 개화파 인사인 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이후의 친일 행적으로 아직도 손가락질을 받고 있을망정 나름대로는 커다란 민족의 유산을 하나 남긴 셈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백두산을 우리 영토로 인식하도록 기여했다는 점이 애국가의 공적이며, 또한 그 가사를 지은 윤치호의 공로다. 초중고 시절을 통해 월요일 아침마다 조회 시간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며 애국가를 부르는 과정에서 백두산에 대한 영토 관념이 저절로 핏줄에 배어들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에 세워진 정계비가 백두산을 우리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보다 더욱 직접적인 학습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도 대체로는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잠깐이라도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고향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들만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백두산 정상에 올라 세상을 향해 한껏 가슴을 펼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법하다. 그만큼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주 남북정상회담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 민족적인 향수를 부채질했다. 지금껏 백두산에 오르려면 당연히 거쳐야 했던 중국 쪽 코스 대신 북한 쪽 등산로로 올랐다는 사실부터가 감회를 자아낼 만하다. 두 정상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장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반도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문 대통령의 등정은 백두산이 과연 어느 나라의 영토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새삼스럽지 않은 질문이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제3조)고 규정함으로써 당연히 백두산도 우리 영토로 간주되고 있지만 북한이라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국가 체제는 다를지언정 유엔에도 가입돼 있는 엄연한 주권국이다. 더 나아가 핵무기까지 개발함으로써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무장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능라도 경기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며 스스로 ‘남쪽 대통령’이라고 소개한 것도 그런 이유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과거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의 만남부터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가까워졌느냐, 아니면 오히려 분단이 고착화되고 있느냐 하는 논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더구나 백두산에 있어서는 이미 중국과 경계가 나뉜 상황이다. 1962년 체결된 북·중 국경조약에 의해 천지 중간 부분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졌다. 백두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 중국 땅으로 편입됐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역시 자기네 애국가에서 ‘백두산 기상’을 강조한다. 그보다 더 널리 불린다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에서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게 약간 어색할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젠 우리 애국가에서 ‘백두산’이라는 단어를 지워야 할 때가 됐다. 헌법의 영토 조항도 당연히 고쳐져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동조라기보다는 상호 이해의 차원이다. 북한이 애국가에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을 노래하면서도 한라산을 거론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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