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만의 미소서식지

  • 등록 2018-04-02 오전 6:00:00

    수정 2018-04-02 오전 6:00:00

[이데일리 고규대 문화·레저산업부장]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젊음은 청소년기를 보낸 마을로 훌쩍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 집 옆 밭에서 버려진 채 서리를 맞은 배추를 잘라내 된장을 풀어 배춧국을 만들고, 항아리에 한움큼 남겨진 쌀을 주워담아 밥 한그릇을 지어 뚝딱 한끼를 먹는다.(영화 ‘리틀 포레스트’) 또 다른 젊음은 집조차 마다한다. 집세내기 조차 어렵게 되자 여행가방에 옷가지를 싸고 지인들의 집을 들락거린다. 집이 없다고 취향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영화 ‘소공녀’)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마이크로해비타트(Microhabitat)’다. 미소(微小)서식지, 그러니까 애벌레에게 나뭇잎 하나가 자신의 집이자 먹을거리인 것처럼 ‘아주 작은 거처’라는 뜻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이 머물고 있는 시골집도 어찌 보면 미소서식지다. 혜원과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에게 비바람과 번개가 몰아칠 때 반려견과 함께하는 이불 속, 하루가 저물 무렵 위스키 한 잔과 어깨를 기댈 수 있는 품만 있으면 족하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이들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집에 쌀이 떨어지고, 심지어 집조차도 없어도 행복을 지키는 게 가능할까 불안해 보인다. 그런 의심의 눈초리에 영화는 이렇게 대답한다. 가난한 삶은 있어도 남루한 삶은 없다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향과 정반대로 사는 인물일지라도 그만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실제로 전 세계 57개국의 직장인 20만 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49위에 랭크된다는 결과만 봐도 물질적 양이 늘고 돈이 쌓인다고 모든 이가 행복해하는지 물음표가 남는다.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30여 년 만에 다시 주목받은 이유도 또 다른 대답을 준다. ‘小確幸(しょうかっこう·소확행)’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저술한 ‘랑게르한스섬의 오후’라는 수필집에서 쓴 단어다. 하루키는 2015년 ‘무라카미 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만든 사이트에서 소확행을 정의했다. ‘①작지만 확실한 행복 ②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고 널리 알렸다 ③예문 : 겨울밤 고양이가 이불 속으로 쏙 들어오는 순간이 나의 소확행이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달 8일까지 한 달여 동안 소확행이나 힐링 등을 다룬 에세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했다. 교보문고에서 같은 기간 힐링 에세이 판매량은 전월 동기 대비 123.4% 늘었다. 기존 도서 주요 구매층인 30~40대 여성보다 20대의 관심이 두드러지는 게 특이하다. 실제로 마이크로해비타트나 소확행의 유행은 행복에 대한 개념의 변화로 해석된다. 2000년대 중반을 휩쓸던 잘 먹고 잘살자던 웰빙의 유행과 다르다. 2010년 중반 연애·결혼·출산을 접는다는 3포 세대의 포기와 달관의 삶을 넘어섰다. 지금 젊은 세대는 ‘적극적 행복찾기’를 대신 선택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알고, 자신의 가치에 기준을 둔 소비에 나선 영화 속 주인공은 누군가에겐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즘 젊음이 새롭게 제시하는 삶의 형태를 보면서 ‘나만의 미소서식지’가 어디쯤인지 잠시 생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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