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대행 역할은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아직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못한 법무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비슷하며, 최경희 총장이 구속된 이화여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조차 누군가는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 경영’을 보완해야 하는 처지다. 모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정국의 와중에서 빚어진 비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자리의 원래 임자를 대신해 잠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해주는 것이 바로 권한대행의 역할이다. 이러한 제도적 취지를 감안하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직책을 맡은 당사자의 임무가 불가피하게 중지됐거나 공석이 됐는데도 후임자를 임명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국가 활동이 여기저기서 멈춰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공백’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그중에서도 황 권한대행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고발까지 당한데다 박영수 특검팀에 대한 수사연장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야권의 탄핵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 권한대행도 촛불·태극기 양쪽 진영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상태다.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떠밀리다시피 역할을 맡았는데도 그 역할과 관련해 정치적 표적이 됐다는 자체가 ‘비정상의 역설’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황 권한대행이 보수세력을 규합하는 중심인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인용할 경우 조기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그를 지지하는 팬클럽도 정식 발족했다고 한다. 팬클럽의 이름부터가 ‘황대만(황교안 대통령 만들기)’이라고 하니, 그냥 제풀에 사그러들 분위기가 아니다. 야권이 그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일 터다.
그의 뱃심과 맷집을 지금처럼 키워준 것은 야권 자신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를 박 대통령과 같은 카드로 여겼으면서도 김병준 총리지명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다. 뒤늦게 그 책임을 놓고 야권 내부에서 서로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늦어도 열흘 뒤에는 헌재의 최종 결정에 따라 지금의 권한대행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정리될 것인지 결판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권한대행이 할거하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다짐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본분에서 벗어났고 비선실세가 권력을 주무름으로써 빚어진 사태다. 다음 대통령은 이러한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권한대행 전성시대’는 이번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논설실장>